[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17일 오전 8시 30분 사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소문난 영화광이었다. 김정일은 1964년 6월 정치 분야에 얼굴을 내민 이래 영화를 권력 승계 도구로 활용했다. 아버지 김일성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극복하고 개혁ㆍ개방에 대비한 내성 강화를 위해 영화라는 도구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는 평가다.


김정일은 '꽃피는 마을'(1970), '꽃 파는 처녀'(1972) 등 북한 대작들의 제작을 주도했으며, 특히 2007년 칸 국제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던 '한 여학생의 일기'라는 작품은 그가 직접 편집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영화의 내용은 모두 북한의 대외 선전용이자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영도력을 미화ㆍ찬양하는 내용이다. 김정일의 영화관련 라이브러리도 엄청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이 소장한 영화 필름과 CD는 3만 개에 육박하며, 한국에서는 이미 소실돼 없어진 1960~70년대 한국 영화 필름들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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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광 김정일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 사건은 지난 1978년 1월 14일 일어난 '배우 최은희 납치 사건'이다. 1960~70년대 충무로 최고의 여배우였던 최은희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진 김정일은 한국, 홍콩 합작 영화 제작을 빌미로 최은희를 홍콩으로 유인, 북한 공작원인 이상희를 통해 그를 강제 납치한 후 배를 이용해 황해도 해주로 납북했다. 이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최은희의 전 남편인 영화감독 신상옥도 1978년 1월 27일, 이상희의 하수인으로부터 최은희가 실종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출국, 7월 14일 홍콩에 입국했다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역시 강제 납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최은희와 신상옥 감독은 김정일의 환대를 받으며 납북 후 첫 작품 '돌아오지 않은 밀사'(1984)를 필두로 '사랑 사랑 내 사랑'(1984) '탈출기(1984)' 등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1930년대 경향파 작가 강경애의 동명 단편 소설을 영화화한 '소금'(1985)이다. '소금'은 1930년대 만주 간도를 무대로 반식민지 무장 투쟁에 가담한 아들과 그를 이해해 가는 소금 장수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선전(propaganda) 영화다. 최은희는 이 영화로 그 해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최은희와 신상옥 감독은 납치 사건이 있은 지 8년 뒤인 1986년 3월 북한을 탈출했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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