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 "폭탄주의 폐해를 논하시오"
[아시아경제 김경훈 기자]"요즘 사람들이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폐단이 심해져, 술에 빠져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술에 중독돼 품위를 망치는 사람도 있다. 이를 구제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대학입시의 논술주제도 언론사 입사시험의 논술문제도 아닙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은 책문(策問)이라 해서 임금 앞에서 치르는 서술시험이었다는데 1516년 치러진 책문에서 중종이 낸 문제라고 합니다. 임금이 직접 시대의 현안으로 '술의 폐해'를 언급한걸 보면 그 당시에도 술이 사회적 걱정거리였나봅니다.
그 후로 500여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나라가 술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얼마전엔 '서민의 친구' 소주에 건강세인 국민건강증진기금 부담금을 붙이네 마네 소란스럽더니 뒤를 이어 '폭탄주'가 말썽입니다.
안그래도 술에 얽힌 많은 일화를 간직하고 있는 한나라당인데 이번에는 아주 잠시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의 대변인이었던 신지호 의원이 "나는 술을 마시면 말을 더 잘한다"는 어록을 남기고 그 어렵다는 포털 검색어 1위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폭탄주'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저녁 생방송 토론회를 앞두고 가진 출입기자와의 만찬에서 신 의원은 폭탄주 5잔 정도를 거푸 마셨다는데 참석 기자들과 동료 의원들이 만류에 나섰지만 "나는 두 시간이면 술이 깬다"며 몇 잔을 더 이어 마셨다는군요. 결국 신 의원의 기대와는 달리(?) 방송에서 논리가 명확하지 않은 토론을 통해 음주 방송 사실이 드러나게 됐고 한나라당 지지자들로부터도 '100만표는 깎아먹었다' 등의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는 처지가 됐습니다.
1960∼1970년대 미국에 유학 간 군인들이 들여와 정치계와 법조계, 언론계 등에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폭탄주. 힘 깨나 쓴다는 집단의 은밀한 관행으로 통하던 폭탄주는 이제 우리 사회 깊숙히 뿌리내린 술자리의 단골이 된지 오래입니다.
과도한 회식비용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경제성', 지방방송을 일시에 마비시키고 참석자들의 동질성을 고취시키는 '단결성'을 강조하는 폭탄주 예찬론도 있지만 그보다는 폭탄주의 '폭발성'으로 인한 폐해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몇해 전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에서부터 모 언론사 기자의 취중 이단 옆차기 사건, 그리고 이번 신지호 의원의 음주방송 논란까지. 큰 사회적 물의와 파장을 일으킨 사건의 현장엔 예외없이 폭탄주가 있었습니다.
폭탄주로 인한 폐해가 사회적 관용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폭탄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검찰이 '폭탄주 추방작전'에 나서고 정치권에서는 '폭탄주 소탕 클럽'(폭소클럽)이 결성되기도 했지만 이번 신 의원 사건으로 또다시 폭탄주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1516년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 답안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또 폭탄주의 폐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무덤 속에 잠들어 계신 중종을 다시 깨워 여쭙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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