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평등한' 그 곳에서 책으로 장애를 이긴다
도서관에 '직업의 平等' 있더라
[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2층 어ㆍ문학ㆍ문헌정보 자료실. 이 곳에 가면 빨간 조끼를 입은 청년 2명을 만날 수 있다. 다 읽고 버려진 책이나 찾기 힘든 책은 어김없이 이들 손을 거친다. 어눌한 말투를 쓰는 그들과 대화해보면 책을 사랑한다는 것이 불편한 몸을 이기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지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임채무(22ㆍ자폐성장애3급ㆍ사진 왼쪽)씨와 김기섭(23ㆍ자폐성장애3급ㆍ사진 오른쪽)씨가 주인공이다.
몸은 불편해도 어렸을 때부터 책을 유달리 좋아했던 임씨와 김씨. 집착에 가까웠던 책 사랑은 이들에게 도서관에서 평생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줬다. 사서라는 인생의 새 목표까지 정해준 것은 물론이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최광식)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사장 이성규)이 추진한 '정부부처 정신적 장애인 고용창출 시범 사업'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취직한 임씨와 김씨는 그렇게 도서관에서 새 삶을 꿈꾸고 있었다.
첫 출근날인 18일 오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만난 이들은 분주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읽고 난 책을 제자리에 꽂아두는 일을 맡은 임씨와 김씨의 손엔 각각 다섯 권이 넘는 책이 들려 있었다. 쭈뼛거리는 모습으로 인사를 건넨 임씨와 김씨. 도서관과 책 이야기를 꺼내자 금세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임씨는 "얼마 전에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오체불만족'을 읽었는데, 팔다리가 없이 태어나 당당히 홀로서기에 성공한 저자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며 "'오체불만족'의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래 전부터 도서관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그 꿈을 이루게 돼 기쁘다는 임씨다. 가만히 임씨의 말을 듣던 김씨가 거들고 나섰다. 김씨는 "어ㆍ문학실에서 일하며 제일 좋은 건 역사책을 맘껏 읽을 수 있는 것"이라며 "책을 제자리에 꽂아두는 일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어느 책이 어디에 있는 지를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좋다"고 설명했다.
820만 권에 달하는 책을 소장한 국립중앙도서관. 이 도서관의 어ㆍ문학 자료실에 있는 책만 따져도 족히 4~5만 권이 넘는다. 하루 평균 500~600명이 찾는 어ㆍ문학 자료실에서 이들은 그렇게 수백 명의 사람들과 수 만권의 책들을 연결해 주는 손과 발이 돼주고 있었다.
임씨와 김씨가 국립중앙도서관과 인연을 맺은 건 지난 1월의 일이다. 도서관 4층에 있는 인문ㆍ사회ㆍ자연과학실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이들은 올해 초부터 시작된 '정부 부처 정신적 장애인 고용창출 시범 사업' 과정에서 정직원으로 전환 채용됐다. 최종학력이 고졸인 이들에게 국립중앙도서관은 진학의 꿈도 꾸게 해줬다.
임씨와 김씨는 앞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일을 하며 대학에 진학해 문헌정보학과 공부를 병행할 계획이다.
임씨는 "평소에도 책 읽는 걸 좋아해 집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곤 했었다"며 "이젠 단순히 책을 빌려보는 수준에서 벗어나 공부도 시작해 사서의 꿈을 이루려고 한다"고 전했다.
일하는 시간 틈틈이 짬을 내 책을 읽는다는 임씨는 읽은 책 목록과 페이지 수를 따로 적어둘 만큼 책 읽기에 열심이다. 그의 꿈은 사서가 돼 도서관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김씨의 꿈도 임씨와 같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문화부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정부부처 정신적 장애인 고용창출 시범 사업'으로 취직에 성공한 장애인은 임씨와 김씨 말고도 3명이 더 있다. 이들 3명은 임씨와 김씨보다 하루 빠른 17일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사서보조 일을 시작했다.
책을 좋아하는 장애 젊은이들에게 책에서 읽은 대로 '하면 된다'는 꿈을 이루게 해준 이들의 이야기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홈페이지(https://www.kead.or.kr)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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