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황석연 기자]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이종묵, 안대회 지음 이한구 사진/북스코프/1만8000원



유배지에서 꽃피운 문화예술의 혼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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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는 매서운 추위를 지나면서 푸르름이 더해지고, 향기로운 사람 즉, 군자는 어려움을 겪어내고서야 그 기개와 절개가 드러난다.(梅經寒苦發淸,香人奉艱難顯氣節)'


목포에서 배를 타고 2시간여를 흔들리며 달려가면 나타나는 섬.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하여 '흑산도'라 이름 붙여진 이곳에 가본 사람이라면 안다. 한번 그 섬에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절해고도(絶海孤島)'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말이다.



정약전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는 이 섬에 유배된 지 16년이 된 1816년 6월6일. 죽은 몸이 되어서야 배를 타고 뭍으로 나올 수 있었다. 섬으로 들어간 정약전은 절망하였다. 흑산도에 들어간 이후에는 전보다 더 폭음을 일삼았다고 그의 동생 정약용은 안타까운 마음을 글로 남기기도 했다.


어려움을 만나서일까. 하지만 정약전은 그저 주저앉아 있지만은 않았다. 섬사람이 되어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첩을 얻어 두 아들을 두고 '사촌서실(沙村書室)'이라 이름을 지은 서당을 만들어 섬마을 아이들의 훈장 선생님이 되었다. 아이를 가르치는 일과 함께 그가 주력한 것은 흑산도 어부 장덕순의 도움을 받아 흑산도 근해의 수산 생물을 명칭부터 분포 현황과 습성 및 이용에 관한 것까지 자세히 기록한 박물학의 기념비적인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현산어보(玄山魚譜)'가 바로 그것이다.


소나무 벌목 금지 정책을 다룬 '송정사의(松政私議)'와 홍어 상인의 표류기를 다룬 '표해시말(漂海始末)' 등은 모두 실사구시의 학문적 성과를 보여주는 그의 대표적인 성과물로 손꼽힌다. 이런 정약전의 모든 성과물은 그가 흑산도에 유배된 16년간의 고된 삶이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유배(流配)는 예로부터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사형 다음 가는 무거운 형벌이었다. 강화도 옆에 강 하나 사이를 두고 붙어 있는 섬이 교동도다. 이 곳에선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집의 지붕높이까지 가시나무를 둘러친 집에서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채 살아간 사람이 있었다. 개구멍 같은 작은 틈으로 먹을 것을 넣어 주어 목숨을 연장하도록 한 참으로 가혹하고 처참한 형벌이었다. 이것을 '위리안치(圍籬安置)'라 하는데 중국에서는 시행된 사례가 보이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만 시행된 형벌이었다. 이 형벌을 도입한 사람은 연산군이었는 데 공교롭게도 그는 교동도에서 위리안치의 유배생활 석 달만에 31세의 나이로 그곳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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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모처럼 힘을 합해 향인(香人)들이 유배됐던 절해고도를 직접 방문해 발로 찾아낸 이야기를 이렇게 한 데 모아냈다. 짧게는 20여일부터 길게는 27년까지 섬에 유배된 기간은 각각 달랐지만 그것을 맞이하는 선조들의 삶의 태도에 따라 학문적 성과나 예술혼은 다르게 표현됐다. 예술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라는 게 저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남해도에 유배된 서포 김만중의 '사씨남정기'와 귀양지에서 홀로 계신 노모를 걱정해 지었다는 '구운몽' 등이 다 그런 사례라는 것이다.



겨울을 이겨내고 맑은 향기를 피어내는 매화처럼, 어려움을 이겨내고 불멸의 예술혼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발자취를 통해 삶의 지혜를 깨닫고 싶은 독자라면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를 일독한 뒤 지도를 삼아 훌쩍 정신여행을 떠날 것을 권한다. 사진작가 이한구씨가 유배객들의 자취를 촘촘히 찾아내 절묘한 풍경과 함께 담아낸 이 책 속에는 14개의 유배 섬들인 위도와 거제도, 교동도, 대마도, 진도, 백령도, 제주도, 흑산도, 녹도, 남해도, 신지도, 임자도, 추자도 등 절망의 섬에서 꽃피운 문화와 예술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황석연 기자 sky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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