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잣나무골편지]'孟父 위장전입之敎'와 스펙 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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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 사회지도층 행세를 할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다. 아이에 대한 지극하고 애뜻한 사랑만 있었어도 지금 당당히 장관감으로 거들먹거릴 수 있을텐데...


후회막급이다. 출세할 기회도 차 버리고, 아이들에겐 사랑이 부족한 아버지로 원망이나 들을 처지가 됐다. 아 ! 문득 부성(父性)이 쓸쓸하다. 나 스스로 '스펙쌓기'를 게을리한 말로(末路)마저 암울하다.

11년전. 잣나무골로 이주한지 5년 되던 해 딸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우리 부부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인근에 초등학교는 세곳. 만선초교, 상품초교, 곤지암초교 등이다. 우리는 상품초교에 아이를 입학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상품초교는 여주군에 속해 있어 입학이 불가능했다. 우리가 사는 잣나무골은 광주 접경의 대여섯개 마을을 통칭하는 '안거리'에 속해 있다. 따라서 만선초교가 우리 아이가 갈 수 있는 학군였다.


두해전, 상품초교는 지방특성화 시범학교로 지정받아 컴퓨터 등 각종 기자재가 확충되고, 골프 연습, 발레, 바이올린,사물놀이 등 특활활동 지원, 원어민 강사 배치 등 각종 혜택이 풍부했다.

학년당 학급은 1개반, 학생도 10여명. 그야말로 '콩나물시루'로 불리는 도시 학급과는 달랐다. 반면 만선초교는 2개학급에 각 20여명 되는데다 특성화학교같은 지원이 없었다. 인근에서는 여주 상품으로 주소만 이전해 학교를 보내는 부모들이 있었다. 심지어는 학군이 다른 곤지암초교에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 강남 8학군에서만 들어봄직한 위장전입은 '시골마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원에 살면서 좀더 자연을 접하며, 공부에 시달리지 않기를 바라는 우리 부부에게도 아이의 학교 선택은 간단치 않았다. 하지만 더 나은 학교엘 보내고 싶은 '孟父 위장전입之敎'는 포기하고 말았다. 굳이 위장전입하면서까지 아이를 가르쳐야 하겠느냐는 결론에서였다.


두해 지나 작은 녀석이 학교 갈 때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간혹 위장전입한 학부모들을 만나 학교 얘기라도 나눌라치면 얼굴이 화끈 거렸다. 자꾸 열의가 없는 것처럼 비춰졌다. 시간이 더 흐른 다음에도 '그 때 보내줄 걸'하는 후회가 가끔씩 밀려왔다.


'거기가 내 운명의 갈림길 일줄이야...맹부가 되는 길이 사회지도층으로 가는 티켓인지도 몰랐으니 내 어리석음을 어찌 탓하랴'
그러니 난 위장전입한 이들을 탓할 자격이 없다.그들은 오히려 나의 귀감이다. 게을러서, 정성이 부족해서, 훌륭한 스펙인 줄도 몰라봐서...결국 필부로 살아갈 팔자니 또 말해 무엇하겠는가 ? 어디 그뿐이랴.


입학해서는 애들에게 학원엘 보내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초등학생들도 학원엘 가는게 보통였다. 덕분에 아들녀석은 같은 반 친구 부모들에게서 기피인물이 됐다. 소위 '왕따'가 된 것이다.


녀석은 학교 끝나도 놀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학원 가는 친구들을 붙잡아 산으로 들로, 계곡으로 끌고 돌아다녔다. 당연히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공부 안 하거나 학원을 빼먹을 때마다 '녀석'을 원망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금강이하고는 절대 놀지마라"고 엄명을 내렸다.


간혹 학부모들은 아내를 붙들고 "제발 학원 가는 애 붙잡지 못 하게 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자 아내는 녀석을 학원에 보내려고 시도했다.하지만 매번 허사였다.


시간만 나면 축구나 하고, 개울, 산에 가 놀고...갈수록 우리들의 방관이 더해졌다. 수많은 맹모, 맹부들이 지극한 자녀사랑을 실천하는 동안 우리 부부는 잣나무숲 언저리에 버티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이들과 우리 부부 사이에 자녀사랑의 미담 하나 만들지 못 한채 벌써 10년이 흘렀다.


그새 나는 간혹 생각해봤다.


맹모가 정말로 맹자를 일류대 보내고, 사법고시 합격시키려고 세번씩 이사했을까 ?
맹모가 장의사촌에서 시장으로, 서당 근처로 이사한 것은 묘지에서 죽음과 인생을 먼저 가르치고, 시장에서 경제를, 서당에서 학문을 가르침으로써 전쟁의 참화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토록 하기 위함은 아녔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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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루한 생각이 깊었다. 아이들아 .미안하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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