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골편지]이젠 농사 짓는 척도 못 하겠다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올해도 고구마농사를 실패할 것 같다.고구마 묘를 심은지 20여일이 지나서 겨우 잎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동안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느라 몸살을 앓았다. 대체로 5일 이내에 자리잡을 고구마 묘는 보름 이상 잎이 다 마르도록 깨어나지 못 했다. 올해 세고랑의 고구마밭을 만들었다. 대략 15평 정도 될 것 같다. 그래도 항상 비중 있게 심는 작물이다.
작년에 고구마 작황이 좋지 않아 올해는 물이 잘 빠지는 밭 가장자리에 심었다. 호박고구마다. 이십여일전 고구마 묘를 사려고 농원에 들렸을 때 농원주인은 시들었지만 뿌리가 많이 자란 것을 공짜로 줬다. 다른 모종들을 사는데 덤 정도로. 나는 덥썩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잎이 거의 마르기는 했지만 뿌리는 강해 보였다. 고구마 묘 한단 8000원을 절약할 수 있게 됐다고 내심 좋아했던게 문제였다. 올해 모종과 씨앗, 발효퇴비 등으로 모두 8만원 정도를 썼다.
힘겹게 깨어난 고구마 묘가 안쓰럽다. 어릴적 겨우내 고구마를 많이도 먹었다. 그래서 늘 고구마가 지겨웠다. 요즘 고구마는 건강 혹은 웰빙식품이라고 인기가 많다. 난 고구마가 '가난한 이들의 음식'이라고 여겨왔다. 역사교육의 영향도 있을거다. 고구마를 구황작물이라고 배웠으니 말이다. 고구마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먹었다는 배움은 어릴적에도 그다지 귀한 먹거리로 여겨지질 않게 했으리라..
그런 작물이 또 있다. 감자다. 고구마가 겨울 식품이라면 감자는 여름 식품이다. 여름 내내 찐 감자, 감자 섞인 밥, 감자국 등 하여간 감자도 지겹게 먹었다. 그런 고구마, 감자는 18세기 유럽, 아시아인의 수많은 목숨을 살렸다. 그야말로 굶주림의 역사와 함께 했던 작물이다. 웰빙식품으로 격상되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대접은 아니다.
어쨌든 구황식물인 고구마가 뒤늦게 되살아 다행이기는 하다. 하지만 또 실수했다. 그래서 한가한 무렵 고구마 묘 잘 고르는 방법을 다시금 알아보겠다고 잣나무골 아랫마을의 '왕룽' 경수 아저씨한테 물었다. 그동안 感으로 선택한 것에 어떤 실수가 있을 것이라고 여겨져서다.
'왕룽 아저씨'는 "묘가 젤 중요혀. 바로 잘라다 심어야 고구마가 잘 매달려.지금은 새로 모종을 내기는 늦었어"라고 가르쳐 준다.
아차차...!!
고구마 묘를 선택하는 방법은 되도록 싱싱한 묘를 사는 것이다. 묘를 채취한 지 며칠 지나 시들시들한 묘는 절대 안 된다.
이것도 일종의 꺽꽂이 이므로 시들은 것은 활착률이 절반 이하로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 싸다고 사면 헛수고하기 십상이다.
내가 잣나무골에 정착한 후 제일 먼저 재미를 본 농사가 고구마 농사다. 잣나무골 입주 삼년째 되던 해 내 머리통만한 고구마를 무려 네푸대나 수확한 적 있다. 그 해 나는 고구마 묘를 여주 금사 묘목장에서 직접 구해다 심었었다.
하지만 이듬해 고구마 묘목장을 다시 찾았을 때 모두 참외밭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후엔 그저 곤지암 화원에 가서 묘목을 사다 심어왔다. 그리곤 지금껏 고구마 농사가 제대로 된 적이 없다.
옛날 같으면 나는 가족들 구황도 못 할거다. 그저 고구마라도 잘 심을 것이지...
그런 고구마를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확실히 내 농사는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고구마때문에 그걸 확실히 알게 된다. 고구마 잘못 심은게 안타깝다기보다 가난한 시대의 고구마를 생각하는 것이 먹물스럽다. 이젠 조그만 텃밭을 두고 농사 짓는 척도 못 하겠다.
추신: 감자는 1560년 남미 잉카제국에서 유럽으로 전래됐다. 초기에는 '악마의 식물'이라고 천대받았다.17세기 폴란드, 러시아 등 북유럽에서 많이 먹던 것이 점차 남부 유럽으로 확산돼 가난한 이들의 양식이 됐다. 감자를 가장 많이 주식으로 삼은 나라는 아일랜드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는 호밀을 모두 빼앗기고 소작민였던 원주민들은 감자로 연명했다.
감자를 주식으로 하면서 아일랜드 인구도 크게 늘었다. 감자를 먹던 한 세기동안 아일랜드인은 500만명 이상 인구가 급증했다. 이 중 300만명이 감자를 주식으로 살았다. 그러던 19세기 중엽 아일랜드의 비극이 감자에서 시작됐다. 감자 마름병으로 유럽 전역의 감자가 검게 죽어버린 것이다. 이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감자곰팡이가 유럽으로 옮겨진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일랜드인 100만명이 굶어죽었으며 150만명이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2002년 작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갱스오브 뉴욕'은 이때 건너간 아일랜드 인의 정착과 뉴욕 형성과정을 담은 영화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바로 아일랜드 이주민의 2세다. 자동차 산업을 키운 것은 감자인 셈이다.
감자는 우리나라에 1824년 만주 간도지방으로부터 전래됐다. 서울에는 1883년 선교사들에 의해 처음 재배됐다.
고구마는 감자보다 좀 이르게 전래됐다. 조엄이 1763년 일본의 통신사로 갔다가 구해왔다. 고구마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은 이광려로 명나라 책 '농정전서'를 통해 확인하고 조엄에게 구해올 것을 요청하면서 이뤄졌다. 조선은 17, 18, 19세기 등 300여년동안 전염병, 가뭄, 흉년, 권문세가의 수탈을 겪었다. 혹독한 굶주림에 빠진 백성들을 구해준게 고구마, 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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