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골편지]잠과 책과 장갑 그리고 카타콤브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잠과 커다란 카타콤브>
강변역에서 지하철을 탄다. 책을 펴든다. 이내 잠이 온다. 하지만 은근히 걱정이다. 내가 내려야할 을지로3가역을 지나쳐 버릴 것만 같다. 그래도 잠을 이기지 못 한다. 얼만큼 잤을까? 을지로3가역 도착 안내방송이 어렴풋이 들려온다.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나 잠에 취한 채 출구로 향한다. 참 희한한 일이다. 분명 나는 잠든 후 다른 역의 안내방송 소리를 전혀 듣지 못 했다. 심지어는 을지로4가역 안내방송 조차 들은 기억이 없다.
왜 내 귀는 을지로3가역 안내방송에만 철저히 열려 있는가? 잠들었다가도 을지로3가역을 지나쳐 버린 적은 한 번도 없다. 내 옆에 앉은 사람도 앞사람도 졸고 있다. 그들도 나처럼 그들이 내려야할 역 안내방송만 듣는 건가? 몇 사람은 졸고, 몇 사람은 책을 읽고... 내가 탄 지하철 칸은 커다란 카타콤브다. 아주 고즈넉하다. 모든 풍경들이 무덤의 벽면에 부조처럼 새겨져 영원히 정물로 박혀 있을 것만 같다.
'00역' 안내방송이 또 흘러나온다. 부조속에서 깨진 파편처럼 어떤 사람이 튀어나온다. 각자가 내려야할 역이 호명되고, 지하철속의 사람들은 삶의 또 다른 풍경으로 사라진다.
나는 날마다 지하철을 탄다. 내게 호명될 역이 있고, 내가 잠시 어떤 시간을 졸면서 머물고 있다. 그것이 이상하다.
<세 개의 수면제>
이상한 것은 또 있다. 책을 붙들기만 하면 잠은 또 왜 이리 몰려오는지...수면제를 먹은 적이 없다. 그러니 수면제가 어떤 건지도 잘 모른다. 아마도 국어사전을 열면 책에 관해 이렇게 쓰여 있지는 않을까? '책은 수면 성분이 풍부해 펼치면 즉각 잠을 잘 수 있다. 특히 복용하는 방식은 검은 활자를 눈으로 삼키는 것이지만 지나치게 남용하면 아주 못 일어날 수도 있으니 주의 바란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책의 수면효과는 별도의 임상실험이 필요치 않다. 그러니 난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이 이해되지 않는다. 내가 새벽 전철에서 잠들었다가 정확히 어떤 역에서만 깨어나는 것처럼. 왜 잠 못 든다는 건지...
"잠이 안 와 ? 그럼 ! 침대에 누워 책을 읽어. 초원의 양이나 별을 헤아리는 건 아주 구식이야."
퇴근길, 강변역에서 곤지암행 버스를 타도 마찬가지다. 자리에 앉아마자 책을 펴든다. 버스안에서 책을 펴드는 이유는 읽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단연코 잠들기 위해 책을 펴드는 적도 많다. 한시간이나 되는 강변-곤지암행 버스길은 잠들지 않고 매일 왕복하기가 쉽지 않다. 무료하고 지루한 길이다. 내 가방속에는 항상 세권의 책이 있다.
말하자면 나는 수면제 세 종류를 지닌 셈이다. 머리가 좀 무거울 때 가벼운 읽을거리를 꺼내든다. 몸도 마음도 가벼운 날은 집중력이 필요한 책을 읽는다. 강동을 지날 무렵 잠이 든다. 책을 무릎위에 그대로 내려놓은 채. 그렇게 잠들었다가 바닥에 떨어뜨려 누군가가 주어준 적이 여러 번이다.
나는 또 그렇게 잠들었다. 쌍령리-산이리-삼리를 지나도록 난 또 안내방송을 듣지 못 했다. 광주 조선요 박물관, 소머리국밥촌 안내방송도 지나쳤다. 하지만 곤지암 터미널 안내방송이 울리면 나는 어김없이 일어선다. 종소리에 침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만큼이나 조건 반사적이다. 지나치지 말아야한다는 강박이 만들어낸 현상일 수도 있다.
창문 너머 한 계절이 왔다가 또 가는 모습이 잠깐 어렴풋이 보이기는 한다.
<여름 장갑>
내 가방속에 책과 함께 들어 있는 물건이 또 있다. 지난해 말 후배들이 사준 쑥색 털 장갑이다. 나는 그 장갑이 좋다. 늘 가방속에 넣어둔다. 잠을 자다보면 제일 처치 곤란한 게 손이다. 팔짱을 껴 겨드랑이에 붙여두기도 불편하고, 주머니에 넣기도 갑갑하고, 무릎 위에 울려놓자니 손 시리다. 한 여름철에 쏟아지는 에어콘 바람도 영 마뜩찮다.
그래서 장갑을 낀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잔다. 잠을 잘 때 수면양말을 신고 숙면을 청하는 것과 비슷하다. 설령 발이 이불 밖으로 튀어 나와도 발이 차가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과 같은 행위다. 새벽 출근길 집을 나서면서 '오늘은 버스에 오르자마자 잠을 자야겠다'고 벼른다. 아침 4시57분 곤지암에서 강변행 두 번째 버스를 탄다. 대개는 나 혼자이거나 두어명 정도 함께 버스에 오른다. 잠들기전 두꺼운 겨울 장갑을 낀다.
장갑을 낀 내 모습이 어색하다. '잠을 잘 자기 위해 그쯤이야 대순가?'
한 때 책을 읽는 것이 내가 '내게 주는 보너스'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집에서 직장까지 대중교통으로 두시간 가량. 잠을 자지 않고 책을 읽는다면 일주일에 한권 정도는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점차 잠에 지쳐간다. 잠과 책 사이에 내가 끼어 있다.
<우리 세대는>
나는 끼어 있다. 또 우리는 끼어 있다. 직장 생활, 가정 생활, 부모나 자식간의 문제만해도 우리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기분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는 점차 어떤 보너스도 챙기지 못한다. 내 친구들은 곧잘 푸념한다. 우리는 '낀세대'라고. 공감한다. 군대시절 쫄병 때는 고참들 눈치보고, 말년에는 후배들 눈치봤다. 구타 근절이라나 뭐라나, 매일같이 신경이 바짝 쓰일 지경이었다.
직장생활 초년병 때는 상사들 잘 모시라고 교육 받았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요즘 우리들은 후배들을 잘 챙기는 것이 리더십이라고 배운다.
우리는 부모를 봉양하지만 자녀들에게서는 봉양받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재테크만 해도 그렇다. 해야한다고 하면서 아무런 준비는 없다. 아이들 교육에 다 쏟아붇고 있어서다. 대개 평범한 소시민인 우리 또래들이 두명의 자녀에게 매달 100만원 이상의 학원비를 지출하고, 비싼 등록금과 주택담보대출로 매달 일정한 액수의 원리금을 치르고 있다. 저축은 커녕 미래소득 일부를 당겨쓰고 있는게 일반적이다. 내가 그렇다. 내 친구들이 그렇다.
지하철에서 졸면서 그렇게 우리는 카타콤브의 긴 회랑 한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다.
피곤하고, 고단하다. 간혹 충무로나 명동, 종로 한복판에서 모임을 마친 늦은 밤. 새가 됐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안식처를 찾아 깃들 수만 있다면...아, 내 날개에 뭍은 유랑의 더운 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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