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윤제균. 2009년 여름 '해운대'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국 1000만 관객을 넘기며 한국 최고의 상업 영화 감독으로 올라선 사람이다. 그러나 윤제균은 '해운대'보다 훨씬 먼저 자신의 성격을 드러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과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 등 할리우드 두 공룡에만 관심이 쏠려있었던 2001년 겨울, 최소한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조용히 개봉된 그의 첫 연출작 '두사부일체'에서 시작된 그의 필모그래피는 '색즉시공'과 '낭만자객' '1번가의 기적'을 거쳐 '해운대'의 대성공에 다달았다. 이제 윤제균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 그가 제작한 100억 원짜리 블록버스터 '퀵'과 '7광구', 두 편의 영화가 동시에 극장가에 내붙게 되는 것이다. '7광구' 개봉을 하루 앞둔 3일 JK 필름 본사에서 윤제균을 만났다.
할리우드 키드, 윤제균 일반 관객과 같았다. 마니아까지는 아니고, 영화 보는 두 시간 동안은 현실을 잊고 꿈 속에 빠져드는 할리우드 키드 정도였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연봉 1800만원 엘지애드(현 HS Ad)와 연봉 3000만원 은행 중에서 광고회사에 들어가면 인생이 신날 것 같아 엘지애드에 입사했다. 1998년 IMF가 터지고 전 직원이 돌아가면서 한달 동안 무급 휴직을 받았는데, 돈이 없으니까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참에 나만의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게 당선이 됐다. 차승원ㆍ정선경 나왔던 '신혼여행'이 바로 그 작품이다.
1번가의 기적 '낭만자객'이 '대박' 망하고 난 다음에 큰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생기니 영화에 대한 가치관도 바뀌었다. 철저하게 돈이 되는 흥행 영화만 고집하던 내가 아이한테 부끄러운 아빠가 되기 싫더라. 아이가 커서도 자랑스럽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3년 동안 여러 장르의 영화 시나리오 다섯 개를 썼다 엎었다를 반복하다 우연히 난곡 철거촌 이야기를 그린 TV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초고도 내 스타일대로 나올 것 같아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쓴 유성엽 작가에게 맡겼다. (하)지원이가 시나리오도 안 보고 출연하겠다고 했고 당시 최고던 (임)창정이도 선뜻 출연했다. '1번가의 기적'은 감독과 배우ㆍ투자자 모두 마음을 비우고 초심으로 돌아가 찍은 영화다. 그냥 웃기는 사람으로만 인식되던 윤제균이 감독으로서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관객들에게 각인시키기도 했고. '1번가의 기적'은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작품이다.
해운대 투자사 ㈜CJ엔터테인먼트(현 CJ E&M)가 아주 안 좋을 때였다. '중천' '태풍' 등 큰 영화가 다 결과가 안 좋을 때라, 100억 원 넘는 제작비의 '해운대'에 선뜻 투자하려 하지 않았다. 일년 동안 미친 듯 작업실에 아이디어를 적은 포스트잇을 가득 붙여가면서 시나리오에 공을 들였다. (하)지원이가 제일 먼저 캐스팅됐고 일면식도 없던 (설)경구 선배는 시나리오도 안 본 상태에서 출연 결정을 했다. 2008년 여름 한번 엎어질 뻔 했던 위기를 겪고 난 후에는 일사천리였다. '해운대'는 재미ㆍ감동ㆍ새로운 볼거리 등 상업 영화 흥행 요인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영화다. 컴퓨터 그래픽도 할리우드 '언저리' 정도는 된다. 관객과 배우들ㆍ투자자들에게 모두 고맙다. '해운대'가 없었다면 지금의 윤제균은 존재하지 못 할거다.
JK필름은... 관객과 투자자들 모두에게 신뢰를 주는 영화를 만든다. 대충 할 것 같으면 아예 안 하는 것이 낫다. 요즘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열풍인데, 해외 영화제에서 상 받는 작품성 있는 영화들을 '나가수'라고 한다면, 해외 시장에서 잘 팔리는 '케이팝' 같은 영화들도 필요하다. 하지만 평가의 기준은 달라야 한다. '나가수'에 나오는 최고의 가수들을 평가하는 시선으로 '케이팝'의 그 어린 아이돌들을 바라보면 안 된다. 좀 더 다른 잣대 예컨대 상업ㆍ산업적인 눈으로 JK 픽쳐스의 영화들을 봐 줬으면 한다. 차기작들도 여러 편 준비 중이다. 크리스 컬럼버스 감독('나홀로집에')의 1492픽쳐스와 공동 제작하는 가족 어드벤처 '템플 스테이'는 내가 연출할 예정이고, 이명세 감독의 조선 007 이야기인 '미스터 K', 황정민ㆍ엄정화 주연의 코미디 '댄싱 퀸'도 준비 중이다. 큰 거 작은 거 안 가린다. 신뢰를 줄 수 있는 영화면 오케이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사진_이재문 기자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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