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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리더십] “무모한 도박입니다” 임원 만류 뿌리친 ‘글로벌 決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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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3 불도저 추진력 (상)

‘세계 톱5 현대車’ 승부수 자신감
2005년 4년만에 미국 공장 완공
모듈화, 획기적 전략 정확히 적중


2009년 8월 28일 정몽구 회장이 미국 앨라바마 공장을 방문해 조립중인 차를 점검하고 있다. 검토단계부터 난관에 부딪혔던 앨라바마 공장은 정 회장의 뚝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2009년 8월 28일 정몽구 회장이 미국 앨라바마 공장을 방문해 조립중인 차를 점검하고 있다. 검토단계부터 난관에 부딪혔던 앨라바마 공장은 정 회장의 뚝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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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자네가 미국 공장을 도맡아야 할 것 같아. 이제는 때가 됐어."
현대자동차그룹 출범 이듬해인 2001년 7월 어느날, 정몽구 회장실에 들어갔던 김동진 전 현대차 부회장(당시 사장)은 정 회장의 이 말 한마디에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정 회장이 1998년부터 미국 진출을 되뇌였기 때문에 언젠가는 현지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이 앞섰다. 품질면에서 아직 안정화가 안돼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더군다나 김 사장은 현대차 임원들을 설득해야 했다. 대부분 임원들은 회장의 결정인 만큼 따라야 한다고 수긍했지만 일부는 '무모한 도박과 같다'고 속내를 밝히기도 해 김 사장을 어렵게 했다.
이 같은 생각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보다 불과 10여년 전 앞선 1990년대 초반 현대차 는 캐나다 브로몽에서 완성차 공장을 철수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 현대차가 품질 문제로 미국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라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현지에 공장을 세우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한 베팅일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자금난으로 회사의 생존이 위태해질 수도 있었다.

현대차그룹 출범이후 정 회장의 첫번째 승부수였던 미국 앨라배마 공장 건설은 찬성보다는 반대가 많은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다.

하지만 정 회장은 굽히지 않았다. 컨설팅업체 KPMG가 현대차의 미국 현지 공장건설에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점이 추진력을 높이는데 큰 힘이 됐다.

수 개월에 걸친 검토 끝에 정 회장은 임원회의에서 미국 진출의 당위성을 이 같이 밝혔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미국에는 강력한 무역장벽이 존재하고 이는 수입 차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2년전 세운 '글로벌 톱5 달성'이라는 비전은 미국 시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현지 공장은 우리의 이미지와 위상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경영학 교과서에 나올 법한 모범 사례'로 꼽히는 2002년 앨라배마 공장 건설 추진은 그렇게 시작됐다.

2005년 5월20일 미국 앨라배마에서 열린 현대차 공장 준공식에서 정몽구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05년 5월20일 미국 앨라배마에서 열린 현대차 공장 준공식에서 정몽구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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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근로자를 한국으로 불러라"= 정 회장이 앨라배마 공장 승부수를 띄운 데는 2000년대 초반 전세계 자동차산업의 합종연횡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다. 미국 GM, 포드를 비롯해 독일 폭스바겐 등이 잇달아 흡수합병을 통해 외형을 확대하고 있었다. 현대차가 느끼는 공포감은 극에 달했다.

게다가 당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자동차 기업은 2010년에 5개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제기했다.

현대차가 살기 위해서는 세계 톱5에 진입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김동진 전 부회장은 "세계 5대 메이커로 들어선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생존과 직결됐다"고 회고했다.

정 회장의 추진력은 벼랑 끝에 몰린 위기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앨라배마 공장에 대한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공장 부지가 미국 앨라배마로 확정되고 본격적인 건설이 진행되는 동안 현대차에서는 구체적인 생산 계획이 짜여지고 있었다. 생산규모와 인력 채용 등이 주요 골자였다. 앨라배마 주정부와의 인센티브 등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현대차 내부에서는 전혀 뜻밖의 우려가 제기됐다. 미국 현지 고용인력의 관리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아시아 기업이 선진국인 미국 인력을 다룬다는 게 마뜩찮다는 이유에서다. 위계질서가 제대로 잡힐 리 없었다. 양산체제에 들어가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일각에선 아시아인을 무시하는 인종차별적인 발언도 제기해 현대차 관계자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선진국에 첫 공장을 건설하는 만큼 뭐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애로점을 보고 받은 정 회장은 즉각 미국 근로자들을 한국에 초청할 것을 지시했다. 생산시설을 직접 둘러보면 회사에 대한 이해와 함께 한국인 관리자의 지휘통솔 역량을 신뢰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점도 한 몫 했다.

아무리 현지에서 교육하고 설득해도, 본인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정 회장은 잘 알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북미시장에서 현대차가 꺼내든 광고문구인 'driving is beliving(직접 운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의미)'을 현지 인력 운용에 적용한 것이다.

앨라배마 공장 가동을 6개월 앞둔 2004년 말, 미국 근로자 일행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한두명도 아닌 '포맨(foreman)'으로 불리는 작업반장 150명이 50명씩 세차례에 걸쳐 방문했다.

이들은 아산공장과 남양연구소를 찾았다. 미국 현지에서 생산될 예정인 쏘나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보고 현대차가 작지 않은 회사임을 체감했다.

현직 현대차 임원은 "방문비용을 떠나서 한국인 관리자가 지휘통솔 역량이 있다고 느끼게 한 것 자체가 큰 소득이었다"면서 "품질 뿐 아니라 현지 직원들의 현대차에 대한 충성심도 높아졌다"고 정 회장의 추진력을 평가했다.

이 때 미국 근로자들의 방문은 2006년 경기도 화성 롤링힐스호텔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몽구의 성공, '모듈이 일궜다'= 한숨을 돌렸지만 앨라배마 공장이 제 역할을 하기까지 정 회장은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과거 브로몽 공장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품질 향상이 선결돼야 했는데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2000년 품질본부 신설, 월2회 품질회의를 실시하면서 문제점을 개선해왔지만 근본적인 대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2002년 앨라배마 공장 착공에 즈음해 정 회장은 장고에 돌입했다. 이 즈음 국내 생산기술팀에서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은 부품을 집약해 공급하는 '모듈화'였다. 생산담당 임원의 보고를 받은 정 회장은 무릎을 탁 쳤다.

현대차의 모듈화 프로젝트는 '무모한 도전'으로 불렸다. 모듈작업이 현대차 역사에서 처음 등장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모듈이 품질을 근본적으로 끌어올린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듈화 유무는 품질에 큰 차이로 나타난다. 모듈화 이전까지 현대ㆍ기아차는 자동차 한대에 들어가는 수천개의 부품을 협력사에서 공급받아 자동차 조립라인에 일일이 투입했다. 조립 시간 뿐 아니라 인력 투입 면에서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부품의 성능을 모두 점검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부품의 불량 여부는 조립이 완전히 끝난 다음 이뤄지는 최종 검사라인에서나 가능했다. 결함이 발견되면 차를 분해해 결함 부품을 빼내고 새 부품을 다시 끼워넣어야 했다.

멀쩡한 새 차를 분해하는 만큼 품질은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또 부품 교체를 위해서는 별도의 인력도 불가피했다. 소위 '품질비용'이 증가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측면에서 모듈화는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일본 도요타를 비롯해 전세계에서도 소수 자동차회사만 모듈화를 진행했는데, 완성차 단계까지 가지 않아도 테스트를 통해 어떤 부품이 불량인지를 알 수 있었다.

모듈화 사업이 시작됐지만 생각보다 이행은 쉽지 않았다. 성공 가능성도 불투명했다. 모듈에 맞게 공장 설비를 대대적으로 교체해야 할 정도로 자금 측면의 부담도 컸다. 전공정을 모조리 바꿔야 하는 대공사인 만큼 내부에서도 반대가 심했다.

특히 노조의 반대는 극에 달했다. 2002년 노조는 '모듈화가 로봇 도입을 늘려 결국 근로자의 고용안정성을 해칠 것'이라면서 파업 움직임까지 보이기도 했다.

해마다 파업으로 몸살을 앓아 그 심각성을 잘 알고 있는 정 회장이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모듈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4년 마침내 현대차 최초의 모듈화 설비가 미국 앨라배마공장에 들어섰다. 앨라배마공장은 현대차가 이상적으로 추진해온 모든 첨단 설비의 집합체였다. 공장도 알차게 지어져 작지만 모듈작업을 통해 효율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신차가 나올 때마다 단계별로 모듈화를 도입했다. 국내 공장도 점차 바뀌었다. 노조도 수그러들었다. 모듈화 이후 생산대수가 높아지면서 실직에 대한 우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대차 전직 임원은 "현대차 품질이 도요타의 럭셔리 브랜드인 렉서스나 미국 빅3의 프리미엄 브랜드보다도 우수해졌다. 대중차이면서도 BMW, 벤츠와 맞먹을 정도로 품질이 프리미엄급으로 높아진 것은 이 같은 정 회장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룹 출범 5년만인 2005년 6월, 정몽구 회장은 낭보를 접했다. 다름 아닌 미국 유력자동차평가기관인 J.D.파워의 초기품질지수에서 사상 최초로 일본 도요타를 꺾고 업계 전체 4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5년 만에 낙제생에서 도요타를 제친 우등생으로의 변신. 그것은 고비 때마다 나온 정 회장의 추진력에서 비롯됐다.



최일권 기자 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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