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개발 예산첫 도입한 R&D 代父
[아시아초대석]김용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은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김용근 원장은 스스로도 현장(업종)보다는 정책업무에만 전념해 왔다고 밝힌 대표적인 정책통이다. 상공부(현 지식경제부)의 연구개발사업을 처음 일으킨 대모(代母)로도 불린다. 1985년 5월부터 3년간 상공부 산업진흥과 사무관으로 근무하면서 과학기술처와 치열한 협의끝에 상공부 최초로 공업기반기술개발사업 예산 77억원을 따냈다. 이 것이 상공부 최초의 기술개발사업으로 현재 연간 4조5000억원에 이르는 지경부 연구개발 예산의 씨앗이 됐다.
김 원장이 혼자 맡았던 업무는 당시 과(科)단위에서 현재는 산업기술국으로 국(局)단위로 확대됐다. 부이사관 시절(1995년)에는 외국인 투자유치 업무의 중요성을 인식해 통상산업부 최초로 선진국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유치활동 전략을 마련했다. 외국인직접투자를 매국행위처럼 여기던 당시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KOTRA에 투자유치 기능을 유치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1998년 외환위기 위기 때에는 공무원 신분으로 외국채권단의 고금리 요구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내용의 기고문을 뉴욕타임즈(1998년 1월 20일자)에 단독 기고했다. 김 원장은 기고에서 민간 자금 상환유예 조건으로 외국채권단이 12∼13%의 고금리를 요구하는 것과 관련, 위기의 한국경제를 놓고 흥정해저는 안된다는 부당성을 처음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이후 220억달러가 넘는 단기 외채 상환이자율은 7∼8%선에 타결됐었다. 김 원장은 참여정부 초기에는 균형발전업무에 차출돼 당시 산업자원부로서는 전혀 생소한 업무를 산업정책 틀과 조화시켜 나가며 지역경제국을 신설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KIAT 원장을 맡아서는 기술과 문화,경제,감성을 결합한 지식콘서트 테크플러스포럼을 활성화하고 산업기술포털(ITTS)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융합전도사로 변신했다는 평가다. 5개 기관이 통합한 조직의 보수와 직급체계 개편작업을 하면서 1년간 60여차례가 넘는 호프데이를 했고 단 한차례의 물리적 충돌없이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력=△55세 △전남 순천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행정고시 23회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과장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관 △산업자원부 산업정책본부장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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