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뷰앤비전] 청년세대의 두려움 덜려면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몇 달 전 일본 내각부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조사가 각종 매체에 보도된 적이 있다. 이 현상은 일본에서 197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해 1980년대에 들어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사회생활을 거의 하지 않고 사람들과의 관계맺기에 공포감을 가지고 있어 좀처럼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는 히키코모리로 판정할 수 있는 사람이 무려 70만명에 달하며, 잠재군은 15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경우는 어떨까?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는 데이터는 없지만 청년층에서 유사한 징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학교에서 또래들과 관계 형성을 하지 못하거나 치열한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탈락하는 수많은 청소년이 있고,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들과 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다양한 부적응 현상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또 정서적인 어려움 때문에 상담을 받거나 치료를 받는 경우도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농촌에서 태어나 가족의 지지를 받으며 자수성가한 산업화 세대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또 나보다는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쏟으며 자신의 열정을 불태워 본 적이 있는 386세대나, 민주화 이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는 메시지에 열광하며 자신의 끼를 발산해 본 적이 있는 문화 세대에게도 이 현상은 낯선 이야기일 것이다.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 문화 세대들은 각각 자신의 세대가 가졌던 목표와 열정을 요즘 세대들에게서 발견하기 힘들 것이고 이들을 그냥 지질하다고 규정하기 쉽다.

사회로부터, 관계로부터 벗어나는 현상은 특정 개인들의 문제라기보다는 한 세대를 특징짓는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사실 현재 많은 조직들이 겪고 있는 핵심 문제도 이 청년 세대와의 관계맺기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은 IMF 이후 가속화된 경쟁을 학교에서부터 스스로 치러냈고, 대규모 구조조정의 효과를 목격한 세대이다. 말하자면 청년 세대들은 서바이벌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감을 생생하게 체험한 세대인 것이다.

그래서 청년 세대 대부분은 '하면 된다'는 말이나, '조직과 개인이 하나다'는 식의 말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세상은 언제나 내던져질 수 있고, 웬만큼 해서는 나를 유지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하면 된다'거나, '조직을 위해 희생하라'고 윽박지르면 이들은 점점 사람, 조직, 사회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청년 세대는 기존 조직과 불화한다. 이들 중에 적응력이 좋은 사람들은 조직이 필요한 것을 이야기해주면 필요한 기능을 채우기는 할 것이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기능을 입증하고 평가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계 이외에 마음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활력과 에너지를 조직을 위해 투여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언제든 버려질 수 있고, 그래서 내 개인 능력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일 테니까. 우리는 서로 의지를 모을 수 없는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다.

내 욕망에 타인의 욕망을 복종시키려는 태도로는 서로 차이와 결핍만을 확인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서로를 살리지 못하는 한 개인도, 조직도 같이 죽어갈 것이다. 서로의 관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면 개인과 조직은 서로 겉돌 것이다.

쓸쓸한 연말이다. 나와 우리를 되돌아보는 멈춤이 필요하다. 서로 돌보고 지지하는 구체적 관계가 어떤 것일지 상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멈춤의 시간'을 통해 서로 나누고 돌보는 관계만이 같이 사는 방법이라는 교훈을 얻는 한 해 마무리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돈 없으면 열지도 못해" 이름값이 기준…그들만의 리그 '대학축제' [포토] 출근하는 추경호 신임 원내대표 곡성세계장미축제, 17일 ‘개막’

    #국내이슈

  • '심각한 더위' 이미 작년 사망자 수 넘겼다…5월에 체감온도 50도인 이 나라 '머스크 표' 뇌칩 이식환자 문제 발생…"해결 완료"vs"한계" 마라도나 '신의손'이 만든 월드컵 트로피 경매에 나와…수십억에 팔릴 듯

    #해외이슈

  • 서울도심 5만명 연등행렬…내일은 뉴진스님 '부처핸섬' [포토] '봄의 향연' [포토] 꽃처럼 찬란한 어르신 '감사해孝'

    #포토PICK

  • 3년만에 새단장…GV70 부분변경 출시 캐딜락 첫 전기차 '리릭' 23일 사전 계약 개시 기아 소형 전기차 EV3, 티저 이미지 공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교황, '2025년 희년' 공식 선포 앞 유리에 '찰싹' 강제 제거 불가능한 불법주차 단속장치 도입될까 [뉴스속 용어] 국내 첫 임신 동성부부, 딸 출산 "사랑하면 가족…혈연은 중요치 않아"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