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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선 칼럼]'일가 싸움은 개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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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하나. 시아주버니와 제수는 백 년 손. 시아주버니와 제수는 마치 오랜만에 보는 손님 같은, 서먹한 사이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현대건설 인수전에 나선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그런 관계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시아주버니고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이 제수다. 둘 사이는? 소원하다.

속담 또 하나. 일가끼리 방자한다. 방자한다는 건 남이 못되거나 재앙을 받도록 귀신에게 비는 행위를 뜻한다. 일가친척끼리 화목하게 지내기는커녕 서로 허물을 잡고 탓하며 남에게까지 들춰내어 화근을 만든다는 의미다. 옛말 그른 데 없다고 했던가.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시아주버니와 제수의 현대건설 인수 경쟁 모양새가 꼭 그렇다.
현대그룹은 수차례에 걸친 TV와 신문 광고를 통해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든 것을 직접적으로 비난해왔다. 지난해 정몽구 회장이 현대건설에 관심이 없다고 한 일 등을 들어 현대건설 인수에 신경쓸 게 아니라 해외시장 개척에나 힘쓰라고, 아주 점잖게 충고까지 했다. 현대차그룹은 겉으로는 대응하지 않았다. 대신 상대방의 아픈 곳을 찔렀다. 상대적으로 풍족한 자금력을 앞세우며 현대그룹의 자금 조달 능력에 의문을 표시하는 등 은연중 약점을 공격해댔다. 서로가 방자질을 한 것이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이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현대상선 지분 8.3%를 갖고 있어 이걸 놓치면 그룹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속사정이 있다. 현대건설 인수에 결사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있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이 현대그룹의 적통을 고 정몽헌 회장에게 빼앗겼다는 구원(舊怨) 때문인가?

10년 전인 2000년 3월 현대그룹 경영권을 놓고 정몽구 회장과 현 회장의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이 맞붙었다. 이른바 현대그룹 1차 '왕자의 난'이다. 당시 병석에 있던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3월27일 현대그룹 경영자협의회에 참석해 실질적 장자인 둘째 아들 정몽구 회장 대신 다섯 째 아들 정몽헌 회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두 달여 후인 5월31일 정 명예회장과 정몽구 회장, 정몽헌 회장 3자 동반 퇴진이라는 2차 '왕자의 난'이 정 명예회장의 퇴진만으로 막을 내리는 곡절 끝에 정몽헌 회장은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을 비롯해 현대상선,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등 26개의 계열사를 차지했다. 고개를 떨군 정몽구 회장은 8월 말 자동차 관련 10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런데 만사 새옹지마라고 사정이 변했다. 그룹 분리 이후 정몽헌 회장이 맡은 현대건설 등은 위기에 처하게 되고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는 승승장구한 것이다. 더욱이 정몽헌 회장은 2003년 8월4일 대북 불법송금 특검 진행 중에 자살했고 현 회장이 현대그룹을 이어받기에 이른다. 경위야 어찌됐든 현대그룹의 주인이 정씨에서 현씨로 바뀐 것이다.

현대그룹의 절박함과 정몽구 회장의 후계자 싸움에서 밀렸다는 구원, 현대그룹을 현씨에게서 정씨가 찾아와야 한다는 범현대가의 '적통론' 등이 맞물려 경쟁이 치열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건설이 현대그룹의 모태라는 상징성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속담 하나 더. 일가 싸움은 개싸움. 일가끼리 싸우는 것은 짐승과도 같은 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다. 이 속담엔 '일가끼리의 싸움은 싸우는 그 때뿐이고 원한을 품지 않는다'는 또 다른 의미도 있다. 현대건설 본 입찰이 오늘 마감된다. 이틀 후면 누가 현대건설을 가져가게 될지 판가름 난다. 그 이후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사이는 어찌될까?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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