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대상' 시선일치 광장효과
바티칸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도시국가라는 점에서 유명하다. '작지만, 그 상징적 의미는 크다'라는 표현에는 10억명을 상회하는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로 구성되는 네트워크의 중심으로서 바티칸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가 숨어 있다. 바티칸은 물론 신앙의 중심이며, 유럽의 오랜 역사와 문화유산의 산실이다. 또한 성 베드로 대성당은 이탈리아를 방문하는 많은 이들에게 바티칸을 찾는 충분한 이유를 제공한다.
광장의 특정 위치에서 바라보면 성 베드로 대성당을 에워싼 기둥들이 '나'로부터 확산되는 일대다의 함수관계로 연결돼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나의 빛에서 여러 줄기의 섬광이 퍼져나가듯, 광장 중앙의 한 점은 광장 주변의 기둥들이 이루는 점과 선으로 이어져 부챗살을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확산의 시각적 장치는 정교한 기획과 설계를 통해 구성된다.
사실 이러한 건축적 기획에는 종교가 지닌 메시지의 전파라는 사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복음의 전파가 지닌 속성으로서 확산의 시각적 장치가 주는 상징적 이미지인 것이다. 엘리아데가 지적하는 성스러운 공간의 축으로서 세계의 배꼽이라는 인상을 공감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확산의 시각적 장치가 일방향적으로만 구성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인구가 얼마이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존재가 없다면 바티칸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신학적 차원에서 실체론적인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플로티누스의 이론은 우리네 삶을 반영하고 있다. 중앙에서 주변으로 확산되는 경로는 주변에서 중앙으로 집중되는 경로와 맞닿을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구도를 형성한다. 이는 오늘날 쌍방향적인 네트워크의 개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대상을 바라보는 '나'라는 주체는 다양한 대상을 바라보며 나의 시선을 확산한다. 또한 대상은 내가 바라봄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의미도 그러하다. 하지만 그 꽃이 있었기에 그를 노래할 수 있는 시인이 존재하는 의미가 긍정적인 것처럼 바라볼 대상의 존재가 부챗살 경로를 통해 나에게 집중됨으로써 대상을 바라보는 '나'라는 주체는 대상을 통해 존재할 수 있게 되는 대상으로서의 객체가 된다.
고대 그리스 노천극장의 반원형 구조는 무대의 배우들이 내는 대사를 부챗살처럼 퍼져 있는 관객들 모두에게 생생하게 들릴 수 있도록 매우 효율적인 음향의 확산 장치가 설치돼있다. 확산이 효율적일수록 관객들은 배우에게 집중할 수 있으며 그 효과는 비례관계를 이룬다.
바티칸 대성당의 기둥들이 광장 중앙의 정점과 이루는 확산의 시선은 결국 나에게로 집중되는 시선이 되며, 대상과 주체는 '시선의 이중주'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지닌다. 시선은 상대적이며, 일방향적인 시선은 논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바티칸이 갖는 상징성이 그렇듯 성 베드로 대성당의 광장도 세계와 그렇게 연결돼있다.
우성주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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