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이유는?"
'호호당 선생의 실전 행복학' 강의하는 김태규 고문 인터뷰(1)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산다.
왜? 이유를 묻는 것은 ‘호모사피엔스’의 고질적 습관.
생각해본다.
먼 옛날, 남편들은 처자식을 부양하느라 산에 가서 노루나 사슴을 사냥했다.
며칠을 기다려 드디어 노루 한 마리를 잡는 데 성공하면 쾌재를 부르며 어깨에 둘러매고 귀가했으리라.
기다리던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콧노래를 부르며 가죽을 벗기고 살코기로 탕을 끓여 온 가족이 즐거운 저녁을 보냈을 것이다. 물론 아내는 남은 고기를 잘 갈무리했을 것이고.
남편의 기쁨은 그러나 사실 노루를 안마당에 내치는 순간까지였고, 노루탕 한 그릇 먹는 시간에는 벌써 다음 사냥에 대한 구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저 산에 사슴과 노루가 과연 몇 마리나 남았을까, 다른 놈이 와서 죄다 잡아가면 어떡하지’ 등등 여러 번잡한 생각.
그렇지만 아내는 배불리 먹었으니 즐겁게 수다를 떨기도 하고, 가죽으로 무슨 옷을 만들어 입을까를 궁리하면서 계속 좋은 시간을 보낸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남편은 속으로 철이 없다 여긴다. 그러나 사실 아내는 현재의 상황, 오늘 배불리 먹었고 또 며칠 잘 먹을 수 있는 상황을 즐기는 것이다.
아내 역시 남편의 다음 사냥이 여의치 않을 수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건 그 때 가서의 얘기인 것이다.
누가 더 현명한 것일까?
현명하냐 그렇지 않느냐의 여부를 떠나 아내는 스트레스를 덜 받고 따라서 더 오래 살게 되는 것이다.
행복을 수량화할 수 없다지만 실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산다는 것이 바로 행복의 징표가 아니겠는가.
아내의 욕망은 손에 들어온 노루 한 마리를 장악하는 데 있고, 남편의 행복은 저 산에 있는 노루와 사슴 전체를 장악하는 데 있다.
아내가 가진 욕망의 테두리는 남편이 잡아오는 노획물의 범위에 한정되었고, 남편 욕망의 테두리는 산 전체와 나아가서 그 인근의 산, 이런 식으로 마구 확장되어 테두리가 사실 없다.
아내의 행복은 결국 노루를 잡아오는 남편을 장악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을 장악하는 데 실패하면 불행해한다.
하지만 남편은 사냥터 전체를 장악하지 못하는 한 행복한 법이 없다. 사냥터에 사냥감이 줄어들고 있다면 근심걱정이 그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아내는 남편이 자신과 가족에게 성실한 이상 궁극적으로 행복해한다. 하지만 사냥이 대박이 날 수도 있고 쪽박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남편은 근본적으로 행복할 수가 없다.
남편의 행복과 만족은 지금 눈앞의 노루 한 마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미래의 성과에 달려있으니 바로 리스크 무한대인 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는 '모' 아니면 '도'라고 한다.
남자와 여자가 삶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차이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웬만한 내공이 없으면 이처럼 쉽고 간명한 그림을 내놓기 힘든 것이다.
위 글은 ‘호호당’(好好堂)이란 호를 쓰는 통에 ‘호호당선생’으로, 그 바닥에서는 꽤 널리 알려진 명리학자 김태규 새빛 인베스트먼트 고문(55)이 자신의 홈페이지(http://www.hohodang.com/)에 올려놓은 글의 일부다.
제목은 ‘욕망과의 이별연습.’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우리들은 욕망을 채우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 하며 산다. 물론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 묻고자 한다.
과연 이 게임, 욕망 채우기 게임에 승자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필자가 수 만의 사람에게 상담해주면서 관찰하고 느낀 바로 인간의 욕망은 무한대로서, 한 개인의 욕망만 합쳐도 광대무변한 우주 전체보다 더 크지 않나 싶다.
한 가지 욕망을 달성하는 순간의 행복은 잠시이고 또 다른 욕망이 찾아든다. 간단없이 욕망이 자라고 생겨난다.
필자는 결국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한히 욕망하는 거지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거지 하나씩 키우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무한히 욕망하는 거지’말이다.
말이야 딱 떨어지는 말 아닌가?
그것도 당신이 만약 재테크라는 말에 홀려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의 주변을 돌고 있다면 말이다.
사실 ‘호호당 선생’을 만난 건 홈페이지를 통해서가 아니었다.
충무로역과 을지로3가 역 사이 옛 스카라극장 터에 새로 지어진 아시아경제지식센터에서 그가 강의를 한다는 말을 듣고 사전 인터뷰를 하기 위해 처음 그를 만났다.(참고로 그는 4일 오후 7시에 개강해 총 4회 8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호호당의 실전 행복학’강좌를 맡는다)
인터뷰는 약 1시간여에 걸쳐 진행됐고, 내용은 그의 인생역정이 절반 정도, 그리고 나머지는 그의 인생관, 시장관 등이었다. 첫마디부터 끝마디까지 그의 언사는 예사롭지 않았다. (‘삶이 생동하는 시장’에서 경험을 통해 갈고 닦은 내공을 어찌 우리 같은 평범한 기자가 글로 옮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그의 홈페이지를 찾았다. 좀 더 알고 인터뷰 기사를 쓰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위 글을 만난 것이다. 고민 끝에 그의 글을 먼저 인용해놓고, 그와 나눈 얘기들을 소개하기로 했다. 인터뷰를 아무리 잘 쓴들 그의 글을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은 이쯤에서 접고, 그의 글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를 소개하기로 한다.
“욕망 달성이 행복이라고 여기고, 거기에 매달린다면 다음 순간에는 더 크고 더욱 달성하기 어려운 욕망이 찾아온다.
힘든 것을 쟁취하느라 애를 쓰다보면 우리의 삶이 어느덧 피폐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게임은 어차피 승산이 없다는 사실. 역사상 그 누구도 이 게임의 승자는 없었다는 사실, 필자가 상담을 통해 얻게 된 단순한 결론이다....(중략)...
어차피 게임이라면, 어려서는 마냥 뛰어놀고 혈기왕성한 청춘에는 엄벙덤벙 놀며 중년에는 진지하게 놀다가 노년이다 싶으면 눈을 밖에서 안으로 돌려 내 몸과 마음의 양생을 통해 유한한 시간을 즐김이 어떨까!
내 몸과 마음을 양생한다는 것 역시 알고 보면 그리 어렵지 않다.
먼저 필요한 것은 욕망 게임에 승자는 없다는 것을 직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욕망을 떠나 어떻게 삶을 즐기느냐고 묻는다면 필자의 답은 이렇다.
먼저 코로 숨을 잘 쉬고 있는지부터 확인해보라. 내뱉고 들이쉬는 숨결이 순조롭게 느껴진다면 그 숨부터 즐길 일이다.
아침 출근길의 신선한 공기, 얼마나 좋은가. 공연히 '도시의 썩은 공기'라는 관념일랑 던져버리고. 그저 서늘한 공기가 당신의 폐부로 들어온다면 그 공기를 즐기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대기를 즐기다보면 봄날 흐드러지는 개나리와 벚꽃의 저 화려한 향연도 보일 것이고, 여름날의 서늘한 녹음과 가을날의 새초롬한 저녁 별빛, 이어 겨울날 텅 비어 한가로운 들판을 보면서 삶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면 되지 않겠는가!
삶이란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의 연속이고 더하여 자식을 낳아 장성시키면 이 몸은 죽어 사라져도 내가 창조한 또 다른 몸을 통해 이어져 不滅(불멸)인 것이니, 이르길 낳고 또 낳는 것을 道(도)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니 쉰 중반의 필자는 슬슬 욕망을 내려놓고자 한다.
약간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욕망과의 이별을 연습할 때가 된 것이다. 욕망은 열정과 함께 왔지만, 그 부대낌과 채근질을 언제까지고 받아줄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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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새롭게 호를 지었다. 好好堂(호호당), 거센 욕망들을 내려놓고 나니 그저 마음이 좋고 또 좋아 호호당이다.“
(인터뷰는 다음으로 계속됩니다)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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