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현대그룹 재무구조개선약정(이하 재무약정) 체결을 두고 마찰을 빚고 있는 채권단이 대출 만기 연장을 중단하는 사상 초유의 압박 카드를 꺼냈다.
기업 경영에 있어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채권단의 강경 조치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현대그룹은 법정 대응을 불사하겠단 방침을 내놓으면서 한 치 양보 없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채권단과 재무약정 대상 기업이 체결을 놓고 법정 다툼으로 비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채권단 "현대그룹은 독 안에 든 쥐"=채권단은 결국 현대그룹의 '백기 투항'을 이끌어내고 재무약정을 체결토록 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외환은행 등 채권단은 다음 달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현대그룹의 대출을 모두 회수키로 지난 29일 결정했다. 앞서 8일에 신규 대출을 중단한 이후 2차 제재로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강도 높은 조치다.
채권단이 대출 만기 연장 중단이란 '최후의 카드'를 미루지 않은 것은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현대건설 매각 배후설 등 온갖 추측이 난무한 상황을 조기 진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여기에 재무약정의 예외를 인정할 경우 후폭풍과 다른 기업과의 형평성 문제 등 복합적인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로 현대그룹은 물론 전 계열사는 연내 만기가 도래하는 4000~5000억원 상당의 대출을 갚아야만 한다. 현재 현대그룹이 보유한 현금 유동성은 1조2000억원대로 추산되고 있어 대출을 갚지 못 해 부도에 처할 위험은 적다. 하지만 자금줄이 막힌 상황에서 사태가 장기화하거나 채권단이 추가 제재 조치에 나설 경우 지속적인 경영을 하기는 분명 어렵게 됐다.
외환은행은 주채권은행 변경을 요구하는 현대그룹에 대해서도 '어불성설'이란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차입금을 모두 상환하면 외환은행이 주채권은행의 지위가 사라지는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주채권은행이 변경되더라도 재무 평가를 다시 받을 수 없고 최근 실적으로도 재무약정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현대그룹 "전례 없는 제재 명백한 위헌"=현대그룹은 애초 채권단의 제재 강도가 높아질 것에 대비해 단계별로 대응책을 마련해 뒀다. 채권단이 공동으로 취한 제재 조치에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나선 것도 대응 방안의 일환. 하지만 채권단과의 법정 다툼은 현대그룹으로서도 원치 않았던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로 꼽힌다.
현대그룹은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함께 공정거래위원회에 외환은행 등의 불공정한 집단 거절 행위에 대해 법적 근거와 함께 제소할 뜻을 밝혔다. 현대그룹 측은 "재무약정은 자율적인 사적 계약으로 협조할 의무가 없음에도 채권단이 극단적인 제재를 내리는 것은 형평성을 잃은 과도한 조치"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현재 현대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실적이 사상 최대 기록을 이어가는 상황에서의 재무약정 체결은 대외 신인도 하락 등을 초래해 기업을 오히려 위험에 처하게 할 것이란 판단이다. 주채권은행 변경을 요구하는 데 대해 무조건적으로 불가 방침을 밝히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지난 2000년대 초반 금융 당국으로부터 주채권은행 변경을 권고 받았지만 외환은행과의 관계를 유지했었다"면서 "조속한 시일 내 주채권은행을 다시 선정해 최근 실적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재무 평가를 받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기업에 대한 재무 평가는 매 6개월마다 새롭게 실시토록 규정돼 있다는 게 현대그룹 측 주장이다.
금융권과의 '막장' 다툼을 보고 있는 재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신경전이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서로 한발 물러서 원점으로 돌아가 실리를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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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기자 kim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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