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반딧불이>

"뚜둑∼뚜둑..뚝"
잣나무골에 우기(雨期)가 시작됐다. 우기는 세달 가량 이어진다. 새벽녁 굵은 빗소리는 잠을 흔들어 깨우기도 한다.나뭇잎에 매달린 이슬들이 굴러 떨어지며 더 낮은 잎을 두들이는 소리는 흡사 빗소리같다. 실제 새벽녁 나무 아래 한동안 서 있으면 온 몸을 적시게 될 것이다. 그 비는 매일같이 내리고, 내 마당의 우기는 점차 깊어지고 있다.


우기가 시작되자 반딧불이 돌아왔다. 6월5일 밤 11시경 반딧불이와 첫 조우했다. 늦은 밤 아내와 나는 텃밭 위를 나르는 반딧불이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우기와 반딧불이 그리고 우리 가족은 잣나무골의 이주자들이다.
반딧불이는 우리가 이주하던 무렵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몇 해가 지나고 나서 한두마리 보이던 것이 이제 밤하늘을 수놓는다.반딧불이가 언제 왔는지 명확치 않다. 한두해 지나서 왔던가 ? 아니면 서너해 ? 반딧불이도 멀리서 이주해온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잣나무골의 배경을 이루는 천덕봉이나 원적산에서 건너왔을 수도 있다.

하여간 반딧불이는 해마다 숫자를 늘려 이제는 우리와 함께 기거하게 됐다. 그들도 이제 원적산 아래 잣나무골을 주소지로 가지고 있다.


<도룡농>


오후 무렵 햇빛이 뜨거워지면서 주변 제초작업을 마무리하고 배수로와 웅덩이를 정리했다.


어릴적 봄날 산비탈에서 옹달샘 청소를 하던 것이 생각 난다. 낙엽과 흙으로 메꿔진 옹달샘 청소는 항상 내 몫이었다. 대개 옹달샘은 산비탈 침출수가 스며나는 곳에 있다. 햇빛이 혼곤한 들판에서 일하다가 마시는 샘물은 참 달짝지근하다.


아버지는 논두렁을 정리한다. 모내기 전에 쥐들이 파놓은 구멍이나 유실된 뚝을 고쳐놓는 것이다. 아버지가 멀찍이 논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옹달샘 청소를 마친다. 낙엽과 흙이 제거된 옹달샘의 형태가 드러나고, 흙탕물이 가라앉고 나면 어린 마음에도 기분이 무척 개운해진다.
'아 ! 맑은 침출수 위에 노랗게 띠를 낸 송화가루 뜬 모습이란...'
이마에 땀을 훔칠 즈음 샘가로 올라온 아버지가 손등으로 사알∼짝 송화가루를 밀치고 한웅쿰 물을 웅켜쥔다.


물 맛을 본 아버지 얼굴이 활짝 펴진다.


"크!! 시원하다.!!"


날아갈 듯 기분이다. 그 말은 아버지가 주는 상이다. 뿌듯하기까지 했다.


잠시 추억을 더듬으며 배수로를 정리하다가 아직 부화되지 않은 도롱뇽 알들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웅덩이쪽으로 가서 물 밑바닥을 살펴봤다. 도룡뇽 새끼들이 오물오물하다.


'아직 청소할 때가 되지 않았구나...'
 
우리 집 웅덩이는 마을의 유서깊은 옹달샘이었다. 지금이야 내가 혼자 소유하고 있지만 예전엔 마을 공동 재산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을사람들은 그 물로 위장병이나 피부병을 다스렸다. 샘 이름은 '옻샘'이다. 물 맛을 보면 특이한 성분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내가 터를 잡은 다음 얼마동안 마을 사람들이 물맛을 보러 오기는 했다. 지금은 이곳까지 와서 물을 먹고 가는 사람은 없다.한 여름에도 얼음장처럼 차가워 손을 담그기도 어려울 정도로 시리다. 배수로나 웅덩이엔 침출수가 거세게 뿜어져 나온다.


나는 웅덩이 뚝에 배수로쪽으로 1.2m 가량의 파이프를 꼽아뒀다. 배수로에 커다란 고무대야를 놓아 허드렛물로 쓴다. 간혹 야채를 씻기도 하고, 채소밭에 뿌려주기도 한다. 여름 밤에 몇번 목욕을 한 적도 있기는 하다.


하여간 도룡뇽이 서식하기에는 최적지다.


잣나무골에 정착하면서 처음 만난게 이들이다. 이들은 여름밤 밟힐 정도로 많았다. 마당이나 축대, 데크에까지 침범했다. 지금은 숫자가 줄어든 것 같다. 한동안 우리들에게 핍박을 많이 받았던 탓일거다. 아이들이 도룡뇽 알집으로 장난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배수로에서 건져 빨래처럼 널려놓아 호통을 쳐 봤지만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장난감일 뿐이다.


투명한 원형 비닐속에 점점이 박힌 도룡뇽 알들은 배수로를 가득 메우고, 낙엽 밑에조차 깔려 있었다. 아들 녀석은 그걸 건져다 목에 걸고 다니기도 했다. (도시 아이들이라면 기겁을 했을텐데...)


발견된 일부는 구제되기도 했지만 수난은 계속 됐다. 배수로를 청소할 때마다 알들이 걸려나오는 것은 다반사다. 그래서 6월 중순 전에는 배수로 청소를 해서는 안 되는데.... 올해는 그만 서둘렀다가 일부가 또 수난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그들은 여기 살고 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의 주인였지만 지금은 우리에게 권리를 빼앗긴 것이다. 내가 이곳에 와서 주인이라고 행세하니 말이다. 내게 땅문서가 있는 한 그들의 수난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공존은 어렵다. 그들은 간혹 배수로나 웅덩이로 날아드는 쓰레기, 오염 그리고 거친 손길을 막아낼 힘을 갖지 못 했다.


내가 좀 아량이 있어 그들과 함께 살려고 해도 그건 공존일 수는 없다. 언젠가 그들은 이곳을 떠날거다. 아니면 서서히 이곳에서 소멸의 길을 가든지...어서 빨리 그들에게도 문서를 만들어줘야할텐데...혼자 차지해버린 마을 사람들의 '샘물'이며 그곳의 천부적인 주인들에 가하는 박해, 욕심으로 가득찬 내가 아버지를 추억하는 초여름날이라니....


<또다른 서식자들>


주인과 나그네의 위치가 뒤바꿨으나 되돌릴 방법은 모른다. 알아도 복구할 능력은 없다. 불편한 동거가 도룡뇽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세세히 그들을 불러 관계를 설정하고, 삶을 모색하기에는 여유가 없다. 지난해 어느날 아침 업무가 시작될 무렵 집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아빠, 집에 뱀이 들어왔어...독사야..."
"그러니 ? 피아노 밑으로 밀어넣고 못 나오도록 막아라..그리고 얼른 119에 신고해."
아이들은 뱀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다. 출근하려고 현관을 나설 때부터 마주치는게 뱀이다.축대에도, 데크에도 수시로 출몰한다. 그 날 새벽 아내가 밥을 챙겨줄 때 부엌문을 열어뒀던 것이 화근였다. 아내는 그만 문단속을 하지 않을 채 잠들었던 모양이다.


그 새 들어왔던 뱀은 아들이 일어나 거실에서 발견한 것이다. 아들 녀석은 당황하지 않고 적절히 대처해 곧 상황을 종료시켰다. 119가 와서 포획하면서 뱀의 침범은 끝났다. 그들 보다 자주 침범하는 것이 벌들이다. 해마다 우리 집 처마에는 벌집이 여러 개 매달린다. 이들은 환풍기를 타고 집으로까지 들어오기 일쑤다. 벌에 쏘이는 것은 다반사다. 토종 야생벌들이라 거친 편이다. 특히 딸애가 많이 당했다.


때로 새들이 유리창에 부딪쳐 죽는 일도 있다. 창에 하늘이 잘 비치는 날에는 더욱 그런 일이 많다. 창으로 외부(혹은 자연의 일부)를 집안에 끌어들이겠다고 한 것이지만 무엇인가에게는 무덤이 되니...


우리 가족과 이곳의 토박이들과 벌이는 쟁투는 언제 멈출지 모른다. 그들은 내게 아직 문서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나는 주소도 받지 않은 상태다. 이곳의 주인들과 어서 싸움이 끝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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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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