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구비구비 선택의 연속이다. 퇴근길 대폿집에서도 선택의 순간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소주로 할까, 막걸리로 할까. 순한 소주인가, 독한 소주인가. 삼겹살? 아니면 목살?


그 날도 그렇게 선택의 길목을 몇 고비 지나 소주 잔이 오갔지만 마주 앉은 고향 친구의 얼굴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평소 언변이 좋아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제법 잘 하는 친구였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나.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요즘 고민이 많다. 잠이 안 와." 무엇이 그를 불면의 밤으로 내몰았을까. 대답은 엉뚱했다. "핏줄이냐, 의리냐. 사랑이냐, 우정이냐 그것이 바로 문제야." 사랑과 우정이라니, 막장 드라마같은 3각 관계에라도 빠졌단 말인가. 듣고 보니 막장은 아니었지만 3각 관계는 분명했다.


평생 고향을 지킨 그 친구는 제법 지방의 유지였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고교 동기가 군수에 출마하자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동창생은 당선의 영광을 누렸다. 오는 6월 다시 지방선거가 다가 오면서 고민이 비롯됐다. 집안의 형이 동창 군수의 강력한 경쟁자로 나선 것이다. 누구를 버리고, 누구를 택할 것인가.

그의 고민은 '누구를 지원할 것인가'하는 단순한 선택을 넘어서 있었다. 걱정은 오히려 선거 이후였다. 집안 대소사마다 마주치게 될 형님,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이 파다해 질 동창생. 평생 쌓아올린 인간관계가 단숨에 허물어지는 것은 아닐까. 잔인한 선택을 피해 갈 방법은 없을까.


그의 물음에 내가 가진 답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물 중심' 따위의 말은 공허할 따름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한 기초단체장의 영광과 오욕'을 다소의 과장법으로 말해주는 정도였다. 에두른 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겠지.


그 단체장은 공사 출신의 파이럿에, 경영학 박사이자 유능한 지방공무원이었다. 프로필은 추진력, 열정, 근면, 폭넓은 대인관계 등 현란한 단어로 채워졌다. 그러나 그것은 부패를 가린 가면에 불과했다. 가면을 벗겨낸 곳은 감사원이다. 그의 공식적인 행적을 은밀한 비리의 족적과 접목해 보면 기막힌 이중성의 실체가 드러난다.


2004년- 군수 보궐선거에서 당선된다. 2005년- 군청직원들이 인권위에 진정서를 낸다. 과중한 업무로 시간을 뺏겨 사생활이 침해됐다는 것이다. 군수의 카리스마가 엿보인다. 이 즈음 물밑으로는 초보군수의 '대담한 부패'의 행적이 시작된다. 내연의 여직원에게 통 크게 아파트를 선물하는가 하면 특정 건설사에 총 102억원 규모의 공사를 몰아준다. 2006년- 군수 재선에 성공하고 '지방자치대상'을 받는다. 영광의 그늘에서 비리도 부풀어 오른다. 10억원의 비자금을 여직원에게 넘겨주는가 하면 특혜대가로 아파트를 처제 이름으로 받아 챙긴다. 2009년- '바르게 살기 실천운동'을 벌이면서 자신은 3억원 짜리 별장을 친형명의로 받는다. 2010년- 한나라당 군수후보 결정, 감사원 비리 발표, 위조여권 출국 시도, 체포, 구속.


민종기 당진군수다. 그는 2009년 3대 실천운동 선포식에서 "후손들에게 떳떳한 당진을 물려주자"고 외쳤다. 그러나 그가 물려준 것은 '철강클러스터 당진'의 자부심을 산산조각 낸 군민들의 치욕감일 것이다. 2006년 당선된 시장군수 230명 중 110명(47.8%)이 비리와 위법혐의로 기소됐다. 임실은 1995년 이후 군수당선자 3명이 내리 구속되는 신기록을 세웠다.


또 한번의 선택 - 2010년 6ㆍ2 지방선거가 딱 한 달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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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우리의 진정한 고민은 우정도 사랑도 아닌 듯 싶네. 부디 불면의 밤에서 벗어나게나…


박명훈 주필 pm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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