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기 가네코와 야나기 무네요시. 그들은 부부였습니다. 아내 가네코는 일본을 대표하는 알토 가수였고, 남편 무네요시는 종교학자이자 미학자였습니다.


이들 부부의 조선사랑은 남달랐습니다. 3·1독립운동의 좌절로 절망의 늪에 빠져 있을 때 노래로, 글로 우리 국민들을 위로했습니다. 1919년 5월 야나기 무네요시가 쓴 ‘조선인을 생각함’이라는 글을 읽으며 당시 그의 한국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느껴볼 수 있습니다.

“조선에 대한 경험이 있고 지식이 있는 사람들의 사상이, 거의 아무런 현명함도 없고 깊이도 없으며 또 따스함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이웃 국민들 때문에 종종 눈물을 글썽였다. ……불행하게도 일본은 칼을 휘두르며 윽박질렀다. 이것이 과연 서로의 이해를 낳고, 협력을 증진시켜 줄까? 아니, 조선의 모든 백성들이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은 끝없는 원한이다, 반항이다, 증오다, 분리다. ……사람은 사랑 앞에서는 순종적이지만 억압에 대해서는 완강해지는 법이다. 나라와 나라를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정치가 아니라 종교다. 지(智)가 아니라 정(情)이다.”


그는 1920년 4월 다시 조선의 벗에게 글을 썼습니다. 물론 외롭게 고통 받고 있는 우리민족을 생각하면서 쓴 글입니다.

“조선은 지금 외롭게 고통 받고 있다. 고유의 문화는 나날이 멀리, 태어난 고향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오가는 사람들의 머리는 수그러져 있으며 고통과 원한이 그 눈썹에 나타나 있다. ……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운 공기를 원하고 있다. 인정의 따뜻함을 그리워하고 있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억누를 수 없는 동정을 여러분에게서 느낀다.


조선의 벗이여, 알지 못하는 많은 벗들이여, ……나는 바다를 넘어서 두터운 마음을 여러분께 보낸다. 나는 여러분이 이 마음을 받아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애에야말로 참된 평화가 있으며 행복이 있다.“


그리고 절망속에 빠져있는 우리나라를 노래로 격려하기위해 서울에서 음악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음악회 개최를 위한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저희는 조선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지금 거기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의 심정과 운명을 생각할 때마다 서글픈 기분에 사로잡힙니다.……이 세상에 참된 평화와 우정을 내면에서부터 가져다주는 것은 종교와 예술의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와 같은 길을 통해서 서로의 사랑을 일깨우고 싶습니다. ……저희는 이웃 나라 사람들에 대한 오랜 신뢰와 애정의 표시로 이번에 조선으로 건너가 음악회를 열고 그 모임을 조선 사람들에게 바칠 생각입니다.”


1920년 5월 서울 종로에 있는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야나기 가네코의 독창회가 열렸습니다. 1300명 이상의 관객이 몰려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열린 서양음악독창회로 감동의 무대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의 조선에 대한 열정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신청사를 건설하면서 경복궁 앞에 서 있는 광화문을 철거, 파괴하려 했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의 전통건축을 파괴하려 하는 총독부에 맞서 이의를 제기합니다. 1922년 7월 그가 쓴 ‘장차 없어지려는 한 조선의 건축을 위해서’라는 글입니다.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 네 생명은 이제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다. 네가 과거에 이 세상에 있었다는 기억이 차가운 망각 속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다. 모두가 말을 주저한다. 그러나 침묵 속에 너를 묻으려고 하는 것은 내게는 너무나도 비참한 일이다.……”


국가를 초월하여 빚어진 이같은 사랑 이야기에는 또 한 사람, 아주 중요한 주인공이 있었습니다. 천재 시인 남궁벽입니다. 이들이 있었기에 암흑의 시대에 기적과도 같이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가 꽃을 피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와세다 대학에 유학하던 중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인을 생각함’을 읽고 무네요시를 찾아가 친분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폐허, 창간호에 실린 남궁벽의 시 속에는, 야나기 가네코가 조선에서 불렀던 노래의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정신이 약동하고 있습니다.


흙이여 기름져라, 풀이여 싹나거라, 폐허의
꽃이여 피거라, 열매여 맺거라, 폐허에,
나비여 춤추거라, 새여 웃음 짓거라, 폐허에 와서
시내여 샘솟거라, 고기여 뛰놀거라, 폐허의
흑운(黑雲)아 흩어져라, 춘풍아 불날려라
그리하여 모든 것이 태양 밑에서 성장하여라
그리하여, 폐허가 변하여 화원이 되어라
그리하여, 우리도 세계 예원(藝苑)을 구성하는 일부가 되어라



올해는 한일합병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65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암울합니다. 외롭게 고통을 감내하며 스스로를 지켜왔습니다.


절망의 벽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꿋꿋하게 미래를 준비해왔습니다. 폐허의 더미에 와서 나비여 춤추거라, 새여 웃음 짓거라를 외쳐왔습니다. 역사의 얼음판위에서 우리는 100년의 드라마, 기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100년입니다. 분열과 갈등이 계속되는 한 새로운 100년은 준비되지 않습니다. 미래는 꿈이 아름답다고 믿는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열과 갈등, 끝없는 싸움과 미움속에서 미래의 아름다운 꿈이 영글수는 없습니다. 잘못된 관습과 과거의 성공경험에서 벗어날 때 새로운 미래가 보장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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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3·1절이었습니다. 스스로를 거울에 비춰볼수 있는 행사들이 많았습니다. 야나기 가네코와 야나기 무네요시를 떠올리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야나기 가네코, 조선을 노래하다-이같은 낭독음악회를 통해 지혜를 준 간삼파트너스의 김자호 회장님, 이광만 회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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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 회장 presid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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