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커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삼세판(Third time lucky)'이라는 말이 있다. 빚더미에 앉은 기업의 재무 상태를 정상화하려면 수 차례의 채무재조정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경기침체 속에 '삼세판'은 보다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부실 기업을 대상으로 채무재조정을 실시해도 여전히 부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

비난의 화살은 먼저 은행을 향한다. '돈줄'이 마른 은행이 손실을 우려해 기업 부채를 탕감하는 데 소극적이기 때문.

채권 및 파산 전문가들은 이 같은 추세가 이른바 '좀비기업(zombie company)'을 양산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막대한 부채를 끌어안은 채 간신히 생명줄을 붙들고 있지만 부채를 줄여나가는 데 급급할 뿐 계속기업으로서의 성장은 엄두도 내지 못하기 때문에 '좀비'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사실 부채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이다. CLO는 대출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구조화 증권으로, 신용거품이 극에 달했을 당시 차입대출을 60%까지 편입했다.

골드만삭스의 유럽 채무재조정 책임자인 앤드류 윌킨슨은 "CLO는 미국 국민에게 미치는 파장이 클 뿐 아니라 경제 회복 속도를 결정짓는 주요 변수"라며 "재무건전성이 높은 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려는 이들과 손실을 불러올 채무 탕감에 소극적인 이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좀비기업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다분한 대표적인 예로 유럽 최대 건설업체인 독일 모니에를 들 수 있다. 대대적인 채무재조정을 실시한 모니에는 이미 재무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거리다. 세전 영업이익(EBIT)의 8배의 레버리지에 해당하는 과도한 부채를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부실 기업들은 경영 측면의 구조조정에 새로운 자금을 투입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채권 은행들이 그만한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채권자들이 자금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기존의 채무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기대한 만큼의 수익률을 올리기 힘든 상황이다.

과도한 부채에서 비롯된 좀비 기업 문제는 올해 초 영국 주택건설업체 맥카시앤스턴이 8억 파운드 규모의 채무조정에 나서면서 한층 더 부각됐다. 당시 미국의 부실채권 투자자 오크트리 캐피털은 맥카시앤스턴의 기업 가치를 3억5000만 파운드로 평가하고 인수 제안을 냈다. 맥카시앤스턴의 부채 5억 파운드는 인수하지 않겠다는 것.

RBC의 글로벌 리스트럭처링 그룹 대표인 데릭 삭스는 "일부 기업들은 채무재조정 후 과도한 레버리지를 안게 된다"며 "유럽 은행들은 부채 탕감을 최소화하려고 하기 때문에 다양한 시나리오 가운데 최선의 가정을 전제로 채무재조정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경기가 악화될 경우 일부 기업들은 또 다시 채무재조정을 실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수경 기자 sue68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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