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C";$title="SK";$txt="SK텔레콤은 세계에서 최초로 20대를 공략하기 위한 신세대 브랜드 TTL을 출시해 업계 선두 자리를 선점했다. TTL의 성공으로 SK텔레콤은 그해 경제활동 인구 3분의 1을 고객을 확보했다. 사진은 을지로에 있는 SK텔레콤 T타워 전경.";$size="510,334,0";$no="200904301052249305257A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
'미국 경제 주간지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중 86위, 지난해 기준 매출 100조 돌파 기업, 국내 최대 정유ㆍ통신사….'
SK그룹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선경'이라는 이름의 중견 직물회사에서 출발해 굴지의 그룹으로 성장하기까지 SK는 세 번의 도약을 했고, 그때마다 SKMS와 수펙스 추구는 든든한 원동력이 됐다.
SKMS를 정립한 고(故)최종현 회장도 "SK 세번의 도약은 모두 수펙스 추구의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첫번째 도약은 1969년 폴리에스터 원사를 자체 생산하면서 이뤄졌다.
당시 기술력과 자금에서 밀렸던 우리나라는 폴리에스터 원사를 수입하는 데 급급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폴리에스터 원사를 생산하겠다'는 수펙스 목표를 세웠고 장애요인을 하나씩 제거했다. 그렇게 수펙스 추구의 실천방법을 하나씩 실천한 SK는 4년 후 국내 최초의 폴리에스터 원사 제조업체가 됐다.
두번째 도약은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것이다. 이는 최 회장의 꿈이기도 했다.
중동전으로 10년간 준비해 온 정유공장 설립이 무산된 후 최 회장은 우선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상들과 친교를 맺는 데 집중했다. 이후 민간회사를 설립하면 적극적으로 원유를 공급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1980년 초 원유수급 위기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와 장기원유공급계약을 체결하는 등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1980년 한국 최대 석유회사였던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해 오랜 숙원을 풀었다.
세번째 도약은 정보통신사업 진출이다.
최 회장은 정보통신분야가 각광받기 시작할 때보다 10년 앞선 1984년부터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수펙스 목표로 삼고 준비해왔다. 최 회장은 이동통신 관련 기술을 보유한 미국내 벤처기업에서 실질적인 경험을 쌓은 미주 경영기획실(현 SK USA) 인재들을 중심으로 1991년 선경텔레콤(이후 대한텔레콤)을 설립했고 이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했다.
마침내 1996년 1월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에 성공한 SK는 '국내 최고 정보통신업체'라는 명맥을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다.
손현진 기자 everwhit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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