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유리원판필름 사진과 일치해 눈길
$pos="L";$title="국새와 내함";$txt="국새와 내함";$size="325,225,0";$no="2009031716011205987_2.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사라진 대한제국 국새(國璽)를 되찾았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정종수)은 17일 오전 고궁박물관 회의실에서 고종황제가 썼던 국새를 공개하고 설명회를 가졌다.
이 국새는 국외 반출 중요우리문화재에 대한 유물구입을 통한 국외문화재 환수의 하나로 지난해 12월 소장하게 된 것이다.
$pos="L";$title="거북이형 손잡이";$txt="거북이형 손잡이";$size="307,223,0";$no="2009031716011205987_3.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고종황제가 친서에 쓴 현존하는 유일한 대한제국기(大韓帝國期)의 국새로 국사편찬위원회 소장자료에 사진으로만 전해지던 잃어버린 바로 그 국새다. 국새는 외함(寶?·보록)이 분실되고 내함(寶筒·보통)만 남아있었다.
전체 높이 4.8cm, 무게는 794g이다. 손잡이(寶?·보뉴)는 거북형이며 비단실로 짜여진 끈(寶綬·보수)이 달려있다.
정사각형의 인장면엔 ‘皇帝御璽’라 양각돼 있다. 내함은 황동(黃銅) 재질로 2단으로 돼있다.
하단엔 인주(印朱)를 넣을 수 있게 돼 있고 상단에 국새를 넣는다. 뚜껑은 네 면을 경사지게 꺾어 마무리했다.
$pos="R";$title="국새 몸체의 밑바닥면";$txt="국새 몸체의 밑바닥면";$size="304,327,0";$no="2009031716011205987_5.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하단과 뚜껑 안은 붉은 비단을 붙여 마무리했으나 국새가 들어가는 상단은 두께 0.5cm의 소나무로 내곽을 만든 뒤 붉은 천을 붙였다.
성분분석결과 거북형손잡이는 은(銀)과 금(金) 비율이 81 대 18이며 몸체(寶身·보신)는 57 대 41 비율로 은이 많이 사용돼 손잡이와 몸체가 따로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새의 글씨 중 황제의 ‘皇’은 ‘白’의 아래에 ‘王’을 두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어새에선 ‘自’의 아래에 ‘王’으로 표기됐다.
이밖에도 고종친필의 비석이나 그 때 만들어진 각종 비석군(碑石群), 어보(御寶), 의궤(儀軌) 등에서 확인되는 ‘皇’자는 모두 ‘自+王’으로 적어서 나타냈다.
고종황제가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황제에게 보낸 10여 통의 친서에 사용한 황제어새는 두 종류가 확인되고 있다.
한 종류는 1903년 이태리황제에게 보낸 친서 등에 사용된 것으로 글씨체가 둥글고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다른 한 종류는 1906년 러시아황제 등에게 보낸 친서 등에 사용된 것이다. 글씨체가 각지고 반듯한 분위기다. 현재 원본은 남아있지 않고 유리원판 사진만 남아있다.
확인된 국새 제작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문화각(文華閣)의 옥새와 책문(冊文) 등을 보수하도록 하다’는 고종실록의 기록(광무 5년 11월 16일)으로 미뤄 1901~1903년께 제작돼 1903년에 이태리황제에게 보낸 친서 등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 국새는 공문서가 아닌(공문서엔 ‘대한국새’ ‘황제지보’ 등이 주로 사용됨) 친서에 주로 사용된 점으로 미뤄 비밀리에 만들어져 고종황제가 직접 갖고 쓴 것으로 보인다.
국새는 상서원(尙書院)에서 관리하는 게 상례이나 황제가 이 국새를 갖고 관리한 점은 그 때 정치적 상황이나 긴장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판단된다.
같은 때 만들어진 어보(御寶, 의례용)와 국새(國璽, 실무용)를 비교하면 어보 무게는 3.4kg으로 국새의 네 배에 이르며 크기도 큰 차이가 난다.
주재료에 있어서 어보는 은과 구리가 주성분인 반면 국새는 은과 금으로 만들어져 의례용과 실제 사용함에 있어서의 구별을 둔 것으로 추정된다.
국새 확인의 의의는 국사편찬위원회 소장의 유리원판사진 등으로만 전해져오던 그 실물이 확인됐다는 점과 국외 반출 된 우리 중요문화재를 구입해 다시 갖고 왔다는 점이다.
또 국새가 찍힌 친서내용 중엔 국운이 기울어가는 제국의 황제로서 주변국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절박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어 대한제국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 점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이 국새에 대해 국가지정문화재(국보) 지정신청을 함과 동시에 적절한 때 일반시민들에게 특별 공개할 예정이다. 또 덕수궁 석조전의 대한제국실이 복원되면 고종관련 자료전시에 활용된다.
왕성상 기자 wss404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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