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뛰자 코리아] 돈이 돌아야 내수가 산다
20~30대 창업자 2007년 449명으로 급감
50~60대는 되레늘어 '조로화 현상' 심각
도전정신 사라지고 대부분 '무늬만 벤처'
우수인재 이탈 방지 등 활성화대책 절실


무역업체에 근무하다가 지난해 회사의 부도로 일자리를 잃은 30대 중반의 김 모씨는 당초 계획했던 창업의 꿈을 1년이 다 돼 가도록 이루지 못하고 있다.

김 씨는 "괜히 사업을 벌였다가 모아둔 재산마저 잃고 만다는 가족들의 반대가 거센데다가 스스로도 과연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도 컸다"면서 "취업 준비를 하면서 일당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버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후 벤처 호황기에 편승해 벤처기업에서 개발자로 근무했던 임 모씨는 회사를 나온 후 4년째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임 씨는 "예전 같으면 창업을 했겠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벤처 호황기와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업황은 부정적이다"고 설명했다.

◆"벤처(Venture)?, 벤처(Bencher)!"
벤처산업의 '조로화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젊은층의 창업 열기가 사그라지면서 전체적인 구성원의 노쇠화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청의 '중소기업 조사 통계 시스템'을 통해 벤처기업 창업자의 연령 분포를 검색해 본 결과 지난 2000년 2780명에 달했던 20~30대 창업자 수는 2007년 449명으로 급감했다. 40대 창업자도 같은 기간 2123명에서 1737명으로 줄었다. 반면 50대 창업자는 588명에서 890명으로 60대 이상 창업자도 115명에서 163명으로 증가했다.

이 조사는 매년 전체 벤처기업중 소수의 표본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또 다른 중기청 통계 결과는 전체 국내 CEO중 연령대 사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백분율로 산출했는데, 20대 사장 비중은 2001년 5.9%에서 2007년 0.2%로, 30대 비중도 48.6%에서 13.8%로 급감했다.

젊은이의 창업 급감의 주요인은 대학교 창업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창업의 구심점이 돼야 할 대학생들이 모험과 도전보다 안정에 더 큰 의미를 두면서 취업 또는 자격증 공부에 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6년 탄생한 연세대 창업 동아리 '연세벤처'는 매학기 20명 이상 신입회원을 뽑았는데 지난해에는 이 수를 다 채우지 못했다.

지난 12년 동안 20개 기업을 배출한 서울대 창업동아리인 '서울대 학생 벤처 네트워크'는 지난해 학부생 창업이 없었으며, 고려대 창업 동아리 '젊음과 미래'는 회원을 뽑지 못해 활동을 중단했다. 교수ㆍ연구원 출신CEO가 창업한 벤처기업 비중도 2004년 39.6%에서 고점을 찍은 후 하락세로 돌아서 2007년 12.4%까지 떨어졌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불안하다보니 다니던 직장을 나와 창업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수년 전 인터넷에서 연재됐던 한 웹툰의 내용은 벤처사업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얼마나 부정적인지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사직서를 낸 주인공의 친구가 "'벤처(Venture)' 사업을 시작해 보는겠다"고 말하자 주인공은
"'벤처'(Bencher, 벤처사업을 하다가 사업을 실패한 후 벤치를 떠돌아다니는 노숙자가 된다는 의미)는 가능성 높은 사업이야"라고 대답을 한다.

◆우리는 '무늬만 벤처'
한국벤처산업협회가 1000개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08년 벤처기업 정밀실태조사'에도 벤처에 대한 불신이 진하게 묻어났다.

응답자들은 벤처기업 창업의 위축 원인(복수응답)으로 65.7%가 '높은 실패율'을, 58.4%가 '안정적 직장에 대한 일반인의 요구 증대'를 꼽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국내벤처업계의 원천기술 감소'라는 항목에도 41.5%가 그렇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대학입시에서 수험생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인해 우수한 인재가 다른 분야로 빠져 나간 것이 벤처기업 창업 위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충격적인 것은 설문에 응한 벤처기업인조차 스스로를 벤처기업인이라고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고치를 100%로 놓고 봤을 때 "자신이 어느 정도 '무늬만 벤처'인 벤처기업가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묻는 질문에 52.9%가 벤처기업인은 "50% 이상 그렇다"고 답했다.

창업과 모험으로 대표되는 기업가 정신의 쇠퇴는 기업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의 라이프 사이클, 즉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새로 진입하는 신설기업과 중견기업, 성숙단계의 거대기업이라는 순환 과정을 통해 젊음을 유지해야 하는데 창업의 급감과 중견기업의 퇴출로 인해 대기업 편중 현상은 심화됐고, 국가 경제의 노쇠화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젊은이들의 의지를 일깨워 줄만한 '신화'의 주인공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수많은 신화의 주인공들이 기억 너머로 사라졌고, 이해진, 이찬진, 안철수, 박병엽 등 남은 벤처스타들도 예전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성공 신화'를 만들어야
벤처기업이 우리 사회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은 매우 컸다. 벤처기업 덕분에 대기업이 가만히 앉아서 우수 인력을 독차지하던 시대가 종말을 맞았다. 외환위기 이후 대마불사나 평생직장이니 하는 개념들이 붕괴되면서 대기업 입사, 전문직 진출만 선호하던 고급 인력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연봉이 절반 가까이 깎여도 기꺼이 모험을 택했다.

대학생들도 대기업보다 벤처기업에 취직하기를 원했고, 학업을 중단하고 벤처 창업에 가세하는 대학생과 고등학생도 부지기수였다. 벤처기업의 비즈니스 영역이 확대되면서 학벌과 지연에 상관없이 다양한 능력을 갖춘 젊은 인력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다. 이를 통해 중소ㆍ벤처 기업은 강소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한국 경제는 활력을 되찾았으면서 외환위기도 단기간에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현재 이러한 영향은 과거의 추억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미국 뱁슨대와 영국 런던경영대학이 전 세계 42개국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있는 기업가 정신 국제 공동 연구 컨소시엄인 'GEM 보고서'에 따르면 1인당 GDP(구매력 평가기준)가 1만달러 미만인 국가는 창업이 활발하다가 소득이 높아질수록 하향곡선을 그리다가 2만~3만달러에서 저점을 찍은 뒤 다시금 상승으로 반전됐다.

즉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이어지기 까지는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선진국 단계에 진입하면 대기업의 고용 흡수력이 저하되면서 기회형 창업이 증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현재 기업가 정신이 최하로 떨어진 시점에 놓여 있다. 앞으로 진정한 선진국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기업가 정신의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하며, 벤처기업가의 육성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벤처산업협회 관계자는 "벤처기업은 기존 기업의 비효율성을 해결하고 고용창출 및 경제 활성화는 물론 사회구조의 변화에도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면서 "조세구조 개선, 국책연구개발 과제 참여 확대 등도 중요하지만 기가 떨어진 벤처기업인들의 열기를 되살릴 수 있도록 국민과 정부 모두가 관심을 기울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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