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시각]새벽 서리꽃길 위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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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6만원, 잡부 열명 !"


새벽 다섯시쯤. 성남 태평동 인력시장앞으로 다가온 봉고차 한대, 문이 열림과 동시에 사람들이 우루루 달려든다. 사람들이 채워지자 봉고차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봉고차가 다가올 때마다 사람들이 몰려 난장판을 이룬다. 먼저 자리를 잡으려고 밀치고 실랑이하는 모습도 보인다. 언쟁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그나마 일감을 잡으면 다행이지만 일주일 이상 허탕친 사람도 많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이들에게 오랫동안 일감이 없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래서 인력시장에 모이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자조한다. 실제로 인력시장에서 이름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저 다들 '김씨', '이씨' '박씨'로 통한다.


사람들의 존재조차 미약해지는게 인력시장이다. 나는 인력시장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 돈으로 팔린다는 기분이 들어서다.


직장을 못 가진 채 결혼했던 나는 한달여동안 노량진 인력시장에 나가 돈을 벌어서 겨울 났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도 인력시장에서는 젊거나 경험이 있는 사람들 먼저 팔려나가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모닥불 주위를 서성이다 돌아가는 모습이 흔했다.


몇번 허탕 치고 발길이 안 떨어져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흑석시장을 몇바퀴나 돌았던 적도 있다. 그때는 출근하는 공익근무요원마저 부러웠고 "뼈가 가래떡으로 뽑혀 나와도 좋으니 일해 봤으면"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그런 내게 아내는 당시 비싼 편이었던 '프로스펙스' 등산화를 사준 적이 있다. 변변치 않은 신발을 신었다가 사고라도 날까. 그렇게 힘든 날들을 함께 할 아내가 있어 행복했던 기억이 새롭다.


인력시장에 나온 사람들 또한 다 같은 심정일거다. 가족과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새벽 서리꽃길을 달갑게 걸을 수 있으리라.


지금 인력시장마다 사람들이 넘친다. 개중에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보인다. 건설산업이 위축되면서 가장 먼저 고통받는 사람들은 '없는 이들'이다.


인력시장은 새벽 4시30분 정도면 열린다. 요즘은 불도 못 피운다. 그런 것을 보면서 구청에서라도 난로 하나 잠시 놓아줄 여유가 없을까 안타깝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위기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고용 불안이다. 고용이 무너지면 실물경기가 더욱 침체된다. 돈을 벌어야 소비도 하고 경제도 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앞다퉈 구조조정을 단행할 판이다. 고용효과가 높은 건설, 조선업종이 먼저 한계기업 퇴출을 시작할 태세다. 여기에 정부는 한술 더 뜬다. 공기업 개혁이라는 명목으로 대대적인 인원 감축을 실시할 계획이다. 나라와 국민이 온 힘을 기울여 고용을 지키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을텐데 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건설산업은 여타 산업보다 고용 효과가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지방에서는 건설시장 침체로 기업이 도산하면서 경기가 쑥대밭이 된지 오래다. 건설산업이 살아야 경기에 온기가 도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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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판국에 정부가 4대강 살리기, 보금자리 주택, SOC 건설 등을 포함한 한국형 10대 뉴딜정책을 시행한다.


그동안 건설산업은 로비와 비자금, 각종 사고, 고분양가 등으로 지탄의 대상이 돼 왔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 회복을 선도하는 주체로 바로 세우기 위해서 질책과 애정을 함께 담아주길 기대한다.


이규성 건설부동산 부장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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