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은 어떻게 국민의 삶을 파괴했나
제분협회 7개사 '밀가루 카르텔'
檢공소장 뜯어보니…메이저 3사 대표급 주도
'농심·팔도·맥도날드' 상대 조직적 담합

편집자주밝은색을 띨수록 고급으로 분류되는 '하얀 가루'. 조선 시대 '진가루'라고 불리며 귀한 대접을 받던 밀가루는 6·25 전쟁 이후 원조 물품으로 대량 유입돼 폐허가 된 한반도 백성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줬다. 국수부터 라면, 빵, 과자 등 국민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밀가루는 식품 산업의 필수 원재료로, 가격이 오를 경우 밀가루를 원료로 한 식품 가격뿐만 아니라 '밥상·외식물가'도 동반 상승해 서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키웠다. 아시아경제는 검찰의 밀가루 담합 사건 공소장을 토대로 6조원에 이르는 '밀가루 가격 담합' 설계 과정을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 지난 6년간 담합이 어떻게 서민의 삶을 팍팍하게 만들었는지 해부했다.

[설계자들]①'대기업 김부장'도 울고갔다…'약한 고리' 노린 담합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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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서울 방배동 '사조참치'. 송모 대한제분 대한제분 close 증권정보 001130 KOSPI 현재가 155,000 전일대비 200 등락률 -0.13% 거래량 6,862 전일가 155,200 2026.04.20 15:30 기준 관련기사 [Why&Next]담합 식품사 작년 '적자행진'…1兆 과징금 '선반영' "포켓몬빵부터 라면까지 싹 내린대"…다음달 1일부터 바뀌는 가격표 "라면값 또 올라서 봤더니 밀가루값 내렸더라" 결국 소비자 부담만 늘었다[설계자들]② 영업본부장과 남모 사조동아원 사조동아원 close 증권정보 008040 KOSPI 현재가 1,039 전일대비 0 등락률 0.00% 거래량 164,522 전일가 1,039 2026.04.20 15:30 기준 관련기사 [Why&Next]담합 식품사 작년 '적자행진'…1兆 과징금 '선반영' "포켓몬빵부터 라면까지 싹 내린대"…다음달 1일부터 바뀌는 가격표 "라면값 또 올라서 봤더니 밀가루값 내렸더라" 결국 소비자 부담만 늘었다[설계자들]② 제분BU장, 김모 CJ제일제당 CJ제일제당 close 증권정보 097950 KOSPI 현재가 236,500 전일대비 500 등락률 -0.21% 거래량 28,007 전일가 237,000 2026.04.20 15:30 기준 관련기사 "기업당 최대 3억원 투자"…CJ제일제당, 유망 스타트업 육성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도 굳건…한국 쿠팡, 작년 영업익 첫 2兆 돌파 "가까스로 버텼다"…식품업계, 포장재·환율 변수 2분기 '먹구름' 실수요SU장이 참치 요리를 사이에 두고 머리를 맞댔다. 국내 제분시장 점유율 75% 차지하는 이들 3개 기업은 이른바 ' 메이저사'다. 각 사의 영업총괄 임원 3인은 이날 거래처를 상대로 밀가루 가격을 협상할 때 제분업체들에 유리하게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국제 소맥분 가격은 2012년 t당 276달러(연평균 기준)로 정점을 찍은 뒤 5년 연속 하락세를 보이다 2018년 10% 넘게 뛰어 t당 180달러를 넘어선 뒤 보합세를 유지 중이었다.


이들 메이저사의 밀가루 가격 담합은 두 달 뒤인 2020년 1월부터 본격 진행됐다. 이들 3사 임원은 2020년 1월14일 서울 서대문구 한 식당에 다시 모여 1.5등급 밀가루(중간분) 판매가격을 20㎏당 최소 1만원 이상 올리기로 합의했다.

이로부터 이틀 뒤 이들 3사 제분 영업 담당 임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김모 대한제분 영업본부장과 양모 사조동아원 제분영업1본부장, 이모 CJ제일제당 영업담당이 총대를 멨다. 이들은 1.5등급 밀가루(중간분) 판매 최저가격을 20㎏당 최소 1만원 이상으로 인상하고, 중력 2등급 밀가루의 경우 20㎏당 7500~8000원 이상으로 각각 올리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이 같은 합의 내용을 각 사의 상사에게 보고하는 한편 삼양사 삼양사 close 증권정보 145990 KOSPI 현재가 47,650 전일대비 250 등락률 -0.52% 거래량 10,625 전일가 47,900 2026.04.20 15:30 기준 관련기사 [Why&Next]담합 식품사 작년 '적자행진'…1兆 과징금 '선반영' "포켓몬빵부터 라면까지 싹 내린대"…다음달 1일부터 바뀌는 가격표 삼양사, 차세대 식이섬유 '케스토스' 국제무대 첫 선 와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한탑 close 증권정보 002680 KOSDAQ 현재가 742 전일대비 1 등락률 -0.13% 거래량 144,682 전일가 743 2026.04.20 15:30 기준 관련기사 [Why&Next]담합 식품사 작년 '적자행진'…1兆 과징금 '선반영' "라면값 또 올라서 봤더니 밀가루값 내렸더라" 결국 소비자 부담만 늘었다[설계자들]② [설계자들]①“농심도 당했다”…참치집에서 시작된 담합의 기술 등 제분업계 하위업체인 '마이너사'와도 공유했다. 이들 7개사는 전원 한국제분협회 소속이다. 이들 기업은 밀가루 시장은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해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을 활용해 코로나19 감염병에 따른 원자재 공급망 위기를 틈타 사실상 카르텔처럼 움직이면서 밀가루 가격을 통제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들 7개 제분사는 지난 6년간 32차례나 밀가루 가격 담합을 도모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제분업체들이 밀가루 사용량은 많지만 제분회사를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지 않거나 지분을 소유하지 않은 식품 제조업체를 먹잇감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원재료인 밀가루를 공급받지 않으면 제품을 생산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담합의 대가는 쏠쏠했다. 담합을 처음 주도한 제분업체 임원 대부분이 대표급으로 승진한 뒤 짬짜미를 이어갔고, 제분업계 맏형인 송인석 대한제분 대표는 2024년부터 최근까지 한국제분협회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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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분 메이저사는 '농심' 공략… 가격 인하 요구에 '모르쇠'


가장 큰 먹잇감은 국내 최대 라면기업 농심이었다. 대한제분과 사조동아원, CJ제일제당 등 이른바 메이저사는 최대 밀가루 수요처인 농심을 상대로 담합을 벌였다. 농심은 제분업체 '빅3'와 모두 거래하며 밀가루 시장에서 '기준가'로 인식돼 대형 실수요처와 가격 협상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제분 메이저사는 2021년 여름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에 모여 "원맥 가격이 올랐으니 농심에 납품하는 밀가루 공급가격도 올려야 한다"고 입을 맞춘 뒤, 기존 공급가 대비 최소 35원/㎏ 수준으로 2021년 공급가격을 인상하자는 공동의 목표를 정했다. 또 이들은 2022년에도 농심에 모두 '마이너스 장려금(할인금)'으로 견적을 제출해 기존 공급가 대비 최소 100원/㎏ 수준으로 가격을 인상하기로 합의하고 최종적으로 90원/㎏ 수준으로 가격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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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가격 인상에 농심도 반기를 들었다. 2022년 러시아가 세계 곡창지대 중 한 곳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급등한 원맥 가격이 이듬해 크게 하락하면서다. 농심은 이를 계기로 밀가루 가격 조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메이저사는 "무리할 필요가 있느냐"라며 20원/㎏ 수준으로만 인하하기로 잠정 협의했다가 최종적으로 30~50원/㎏ 수준 인하로 방어했다.


이 같은 미미한 가격 인하에 농심은 2024년에도 재차 가격 조정을 요구했다. 이에 서울 서대문구의 한 참치집에 모인 메이저사는 그해 3월까지는 농심의 요구에 무대응하면서 기존 공급가격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들은 추후에 가격을 인하하게 되더라도 소급 적용은 하지 않고 55~75원/㎏ 수준으로 내리자고 약속했다.


메이저사의 이른바 '농심 속이기'는 지난해까지 이어졌다. 메이저사의 대표들은 2024년 12월쯤 서울 중구의 한 호텔 커피숍에 모여 "원맥 시세는 안정됐으나 환율은 올랐으니 농심 밀가루 공급가격을 인상하거나 적어도 유지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 무렵 변수가 발생했다. 마이너사로 농심에 소량의 밀가루를 납품하던 삼양사가 밀약을 깨고 가격을 인하해 농심의 편의를 봐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메이저사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들은 삼양사 임원에게 연락해 "가격을 인상하거나 적어도 유지해야 하는데, 20원씩이나 인하해서 내면 어떡하느냐" "농심은 (가격을) 같이 가야 하니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라며 제분사 간 상호 공조를 견고히 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삼양사의 이탈을 무산시켜 버렸다.


결국 농심이 지난해 2월께 밀가루 가격을 인하해 달라고 요구하자 메이저사는 밀실 합의를 통해 3~10원/㎏ 수준으로 가격을 내렸다.

10·20대 주머니 털어간 대한제분… 팔도 공략한 '마이너사'


제분시장 점유율 1위인 대한제분은 지난 수년간 이어진 제분업체들의 조직적인 담합을 사실상 주도했다. 대한제분은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은 10~20대가 주 고객층인 맥도날드의 햄버거빵을 전량 생산하는 '빔보QSR코리아'와 '동대문엽기떡볶이'에 납품하는 밀가루 가격도 통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삼양사는 대한제분과 '깐부'처럼 움직였다.


대한제분과 삼양사는 공급가격을 맞춰 1·2위 업체를 나눠 먹는 방식으로 빔보를 속였다. 이들은 서로의 공급가격보다 5~10원/㎏ 정도 낮게 또는 높게 빔보에 제출해 각각 밀가루 공급 업체 1·2위에 선정됐다. 2023년부터 시작된 이들의 밀약이 지난해까지 이어지는 사이 맥도날드는 매년 햄버거 가격을 인상했다. 또 대한제분과 삼양사는 지난해 3월 떡볶이 프랜차이즈 동대문엽기떡볶이의 운영사인 '핫시즈너'에 납품하는 밀가루 가격을 1000원/20㎏ 인상한 것으로 밝혀졌다.


[설계자들]①'대기업 김부장'도 울고갔다…'약한 고리' 노린 담합의 기술 원본보기 아이콘

마이너사인 삼양사, 대선제분, 한탑은 라면시장 점유율 4위인 '팔도'를 공략했다. 이들은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팔도에 밀가루를 나눠서 납품하면서 팔도의 가격 인하 요구에 조직적으로 대응했다. 마이너사는 메이저사처럼 만나서 가격을 협의하기보다는 전화 통화로 논의하면서 팔도에 제공할 할인금을 맞췄다.


이들은 팔도의 공개 입찰을 방해하기도 했다. 지난해 팔도는 밀가루 공급업체를 기존 3개사에서 2개사로 바꾸겠다고 통보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탑은 류모 회장까지 나서서 삼양사와 대선제분 임원들과 소통, '물량을 양보해달라'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3사는 '공동 2등 업체'를 만들어 모두 상생하는 방책을 강구했다. 대선제분과 한탑이 입찰서에 추가 할인금 15원/㎏, 삼양사가 17원/㎏을 기재하기로 합의하면서 팔도가 3사 모두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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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밀가루 담합 리니언시(자진 신고 감면)에 나선 CJ제일제당을 제외한 제분협회 소속 6개 기업과 전·현직 대표이사 7명 및 영업담당 임원 7명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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