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환자 오지 마, 의사가 간다"…제주한라병원의 '발칙한 반란'[上]
김성수 병원장 "진료비 인상보다 서울 명의가 온다" 밝혀
제주한라병원-연세세브란스, '공동 진료' 파격 협약
"준비 안 된 상급 지정은 도민 주머니 터는 것"…내부 쓴소리
"서울 명의가 제주서 수술"… 의료법 근거한 '합법적 왕진’
“수술 후 비행기 탑승 어려운 이비인후과부터 시작할 것”
편집자주
김성수 제주한라병원장(한라의료재단 이사장). 김 이사장은 무리한 '상급종합병원 간판 따기' 경쟁 대신, 서울의 명의를 제주로 초빙해 환자들의 원정 진료 고통을 덜어주는 '실리적 해법'을 제시하며 지역 의료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제주한라병원 제공.
"자격도 안 된 상태에서 '상급' 간판만 달아 진료비를 올리는 건 도민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지금 필요한 건 타이틀이 아니라, 환자들이 서울로 가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실질적 시스템'입니다."
최근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두고 지역 의료계가 뜨거운 가운데, 김성수 한라의료재단 이사장이 본지와의 단독 대담에서 던진 화두는 묵직했다. 그는 경쟁적인 '간판 따기'보다는 '실리(내실)'를 택했다. 서울 '빅5' 병원과의 하드웨어 격차를 쿨하게 인정하고, 무모한 경쟁 대신 '파격적인 협력'을 통해 도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 "무늬만 상급병원 반대… 도민 주머니만 턴다"
김성수 이사장은 최근 논란이 된 '상급종합병원 지정 시 진료비 상승' 문제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의료 인프라와 실력이 서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데 수가(진료비)만 올리는 것은 도민 주머니를 터는 격"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제주지역 상급종합병원 지정 여론이 '지역 자존심' 문제에서 비롯됐지만, 그 결과는 도민들이 떠안아야 할 진료비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며 "발전된 의료 기술과 서비스 없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다, 냉정하게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한라병원 역시 이번 지정 신청에 뛰어들었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지역 의료계 분위기상 우리만 빠지면 의료진이 느낄 박탈감과 오해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신청의 목적'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우리의 신청은 외상센터 등에서 입증된 '실력'을 제도적으로 검증받기 위함이지, '수가 인상'을 통한 수익 창출이 목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설령 지정이 되어 수가가 오르더라도, 그 수익은 서울 의료진 초빙과 시스템 운영에 전액 재투자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도민들이 서울로 가는 항공료와 체류비를 없애준다면, 결과적으로 환자가 체감하는 '총 의료비용'은 오히려 획기적으로 낮아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제주한라병원이 지난해 연세대학교 의료원(신촌세브란스병원)과 체결한 '공동 진료·교육수련·연구 협약'식 모습. 이 파격적인 협약을 통해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의 주요 분야 명의들이 직접 제주로 내려와 진료와 수술을 집도하는 '원팀(One-team) 시스템'이 가동될 예정이다. 제주한라병원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연세세브란스와 '공동 진료' 협약… "서울 병원을 제주로"
이날 김 이사장은 제주 의료의 한계를 극복할 '히든카드'를 공개했다. 지난해 신촌세브란스병원과 체결한 '공동 진료 협약'이다. 이는 단순한 환자 의뢰 수준을 넘어선 혁신적인 모델로, 핵심은 '동일 진료 양식(Protocol) 공유'에 있다.
그동안 대다수 지방 환자들은 서울 대형병원으로 갈 때 검사 결과지와 영상 자료를 바리바리 싸 들고 가야 했다. 하지만 병원마다 전자 차트 양식이 다르고, 가져간 검사 결과를 온전히 신뢰받지 못해 서울에서 다시 처음부터 비싼 검사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로 인해 치료 계획 수립이 지연되고 비용은 이중으로 드는 것이 지방 환자들의 가장 큰 고통이었다.
이번 공동진료 시스템은 이러한 불편을 원천적으로 해결했다. ▲한라병원에서 검사(CT·MRI)한 데이터를 세브란스 명의가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수술이 필요한 경우 서울에서 진행하되 ▲수술 후 항암 치료나 추적 관찰은 서울 의료진의 처방 그대로 제주에서 받는 시스템이다.
김 이사장은 "많은 제주 암 환자들이 서울 병원 근처 '환자방(쪽방)'을 전전하며 겪는 경제적·심리적 고통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 "수술 후 비행기 탑승이 어려운 이비인후과부터"
특히 주목할 점은 인적 교류다. 이번 협약을 통해 진료 대기에만 2~3개월씩 걸리는 신촌세브란스병원의 명의들이 직접 제주에 내려와 진료와 수술을 집도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가장 먼저 논의되는 분야는 이비인후과다. 이비인후과 계통 질환은 희귀암 분포가 많고 수술 후 비행기 탑승이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 그동안 제주에서는 전문 의료진을 찾기 힘들어 환자 대부분이 위험을 무릅쓰고 수도권 원정 진료에 의존해 왔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해당 과 의료진의 파견 진료를 우선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주식은 세금 안 내는데" 내년부터 年 250만원 넘...
일각에서 제기하는 "법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우려도 일축했다. 지난 2010년 1월 개정된 의료법 제33조(개설 의료기관 외의 의료행위)와 제39조(시설 등의 공동이용)는 '환자 진료를 위해 의료기관의 장끼리 협의한 경우 소속 의료인을 현지에 보내 진료하게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미 15년 전 마련된 합법적 토대 위에서, 제주 환자들에게 서울의 의료 기술을 제공하는 가장 현실적인 모델인 셈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