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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 시민군' 돌린저 "헬기 사격 명백·시민 죽음 막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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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명예시민 수여 기자간담회
어깨→엉덩이 관통 X-ray 확인
'리더십 인상' 윤상원, 롤 모델
"되돌아간다면 도청 지킬 것"

14일 오후 전일빌딩245에서 데이비드 돌린저가 전시 중인 자신의 '광주항쟁에 대한 돌린저의 결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찬기 기자

14일 오후 전일빌딩245에서 데이비드 돌린저가 전시 중인 자신의 '광주항쟁에 대한 돌린저의 결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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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에 앉아있어야 했다. 시민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면 보람된 희생이었을 것이다."


14일 오후 전일빌딩245 4층 중회의실에서 열린 광주 명예시민 기자간담회에서 5·18 당시 시민군 데이비드 돌린저(David L. Dolinger)는 "1980년 5월 광주기독병원에서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엉덩이로 관통한 환자 X-ray를 사진을 본 뒤 헬기 사격이 있음을 확신했다"며 "당시 광주는 건물이 그렇게 높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사격은 헬기에서 발생했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1980년 5월 21일 광주 시내로 들어서자 군용 헬기를 목격했다. 돌린저는 "같이 걷던 친구가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한 가게로 끌어당겼다"고 회상했다.


특히, 당시 군인이 사용했던 총알이 국제법으로도 사용이 금지된 덤덤탄이었다고 설명했다. 덤덤탄은 인체 내부에서 납 알갱이 등이 폭발하는 특징을 가졌다.


1978년 미국 평화봉사단으로 입국한 데이비드 돌린저는 전남 영암의 한 보건소에서 일했다. 미국 평화봉사단은 존 F. 케네디가 미국 청년들을 개발도상국에 파견해 기술과 지식을 전수하는 연방정부의 행정기관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인생의 2년을 봉사해 세계 평화에 기여하자"며 1961년 설립했다.

14일 오후 전일빌딩245에서 데이비드 돌린저가 전시 중인 자신의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찬기 기자

14일 오후 전일빌딩245에서 데이비드 돌린저가 전시 중인 자신의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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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린저는 1980년 5월 16일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를 방문했다가 시위를 목격했고, 다른 평화봉사단원으로부터 상황을 전해 들었다. 계엄군의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가 있던 1980년 5월 21일에는 옛 전남도청과 전남대병원 등에서 외신기자 통역과 부상자 후송 등을 돕기도 했다.

그는 고 윤상원 열사를 "도청 지도부 리더로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눈에 띄던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돌린저는 "처음 그를 도청에서 만났을 때는 '당신도 광주시민이다. 광주 소식을 외국에 알려달라'고 부탁했다"며 "주변 시민들을 설득해줬고 덕분에 평화봉사단은 광주시민의 돌봄을 받을 수 있었다. 윤 열사는 롤 모델이었다"고 설명했다.


1980년 5월 24일에는 도청에서 군이 영어로 소통하며 불시에 공격할 것을 대비해 은퇴한 군인 1명과 대학생 2명과 함께 밤을 새우면서 라디오 무선 감청을 했다. 당시 은퇴한 군인은 딸이, 대학생들에겐 꿈이 있었는데, 모두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같은 목표였다. 돌린저는 "당시 광주시민들은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미래와 변화를 위해 본인의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희생했다"고 말했다.


돌린저는 '1980년 5월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항상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도청 항쟁 마지막 날 계엄군이 들어왔을 때 도청 앞에서 앉아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수많은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그날 봤던 폭력적인 모습과 죽음, 시체 등 잔상들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 그날 도청에 가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며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때 죽었어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돌린저는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의 시위는 평화로웠다고 평가했다. 돌린저는 "당시 시민들의 시위는 평화로웠고, 시의 모든 기관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며 "군인이 시민에게 행사한 폭력은 잔인했다. 광주를 '폭동'이라며 왜곡한 것은 가당치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계엄이 선포됐을 때 국회로 시민들이 달려가는 것을 보고 감명 깊었다"며 "시민들이 국회로 향하는 모습이 바로 광주 정신이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5·18민주화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미국인 데이비드 돌린저가 광주 명예시민으로 선정됐다. 광주시는 시정 발전에 기여하거나 지역 위상을 높인 내·외국인,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수여하고 있다.


돌린저는 1978년 한국에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파견돼 전남 영암보건소에서 근무해오던 중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목격한 미국인이다. 또 항쟁하는 동안 광주에서 외신 기자들의 통역을 맡아 취재를 돕거나 병원 등지에서 부상자들을 직접 인터뷰하며 5·18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호남취재본부 민찬기 기자 coldai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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