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의 배당 규모는 분명히 늘고 있다. 지난해 상장기업 배당금은 전년 대비 12%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 수치를 근거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어렵다. 주요 선진 시장들과 비교할 때 배당 성향이 현저히 낮은 수준인 데다 지난해 증가분마저 대부분 금융 업종에 쏠린 탓이다. 제조업 등 실물 산업 분야에선 배당 여력이 충분한 기업들조차 여전히 주주환원에 소극적이다.
왜 한국 기업들은 배당에 인색한가. 여기엔 투자자보다 '재무 안정'을 중시하는 기업 분위기, 글로벌 불확실성, 체계적이지 못한 주주환원 결정 구조 등이 존재한다. 이러한 짠물 배당은 한국 증시의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서도 걸림돌로 지적돼왔다. 예측 가능한 배당정책을 선호하는 글로벌 투자자들은 한국 증시가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배당의 체계화'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자본 시장 밸류업을 이뤄낸 일본의 경우 과거 배당에 인색했으나 토픽스 개편·지배구조 개혁 이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배당 정책을 기업 자율에만 맡긴 구조 자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간 정부가 자본 시장 선진화를 적극 추진해왔으나 배당 확대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일례로 정부가 2023년 세법 개정안에 포함했던 '배당 증가분에 대한 5% 세액공제'는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좌초됐다. 이는 기업이 전년 대비 배당을 늘릴 경우 일부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또 다른 논의 지점은 배당소득에 대한 분리과세 도입이다. 현재는 배당과 이자소득을 합산해 2000만원을 초과하면 종합과세 대상으로 분류되며 최고 45%의 세율이 부과된다. 이에 분리과세 도입 시 대주주의 배당 유인을 높이고, 개인투자자의 세금을 줄여 증시 유입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시장 안팎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비판의 소지도 있다. 고소득 투자자에게 절세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 조세 형평성에 대한 사회적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현금성 자산이 많음에도 배당을 하지 않는 대기업들을 가리켜 세제 유인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쓴소리도 나온다. 지배구조 문제가 더 크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국가 재정 측면의 고민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 시장 선진화를 위해선 이제 배당 정책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됐다. 배당 문제는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불투명한 지배구조, 주주 환원 부족 등 한국 자본 시장이 겪는 구조적 문제들과 맞물려 있다. 단순히 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맡긴 채 개선을 바라기보다 정책이 더욱 적극적인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
더욱이 조기 대선이 코앞이다. 역대 정권 중 증시 부양책을 들고나오지 않은 정부가 없었듯 이번에도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코스피 5000' 시대를 공언하고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역시 '박스피'를 탈출하겠다며 장기주식 보유자 또는 펀드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의 관련 공약을 내걸었다. 다가오는 새 정부 출범은 한국 증시가 반드시 이뤄내야 할 자본시장 선진화는 물론, 그 일환인 배당정책 논의 측면에서도 중요 기점이 될 것이다. 자본 시장 신뢰 회복과 기업 가치 제고라는 큰 틀 속에서 배당정책을 재구성해야 한다.
조슬기나 증권자본시장부 차장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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