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투자 67% 'RCPS 등 우선주 쏠림'
상환권·리픽싱…RCPS 숨은 리스크
회계 기준에 따른 착시 현상, 신뢰도 타격
자본잠식 8000억원. 재무제표만 보면 곧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설에 휩싸였던 기업이 있다. 그런데 이 회사는 불과 1년 만에 순자산(자본) 2000억원 이상을 기록하며 건실한 기업으로 돌아섰고, 2014년 창사 이래 첫 흑자 전환이란 겹경사까지 맞이했다.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을 운영하는 버킷플레이스 이야기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버킷플레이스는 지난해 회계 기준을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서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2023년 말 마이너스 7946억원이던 순자산은 지난해 말 2243억원으로 반등했다.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인식하면서 자본잉여금 3000억원이 늘고 파생상품부채 8200억원이 사라진 결과다.
회계 기준 하나로 평판이 극적으로 바뀌자, RCPS 투자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벤처캐피탈(VC) 투자에서 널리 쓰이는 RCPS는 시간이 흐를수록 스타트업에 재무 부담을 주거나, 기업공개(IPO)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RCPS는 상환권(Redemption Right), 전환권(Convertible Right), 우선권(Preferred Right)을 갖춘 주식으로, 비상장 스타트업이 회사채나 유상증자 대신 자금을 조달할 때 주로 발행한다. 투자자는 기업이 성장하면 보통주로 전환해 차익을 얻고, 부진하면 상환권으로 원금과 이자를 회수할 수 있어 비교적 안전한 투자 수단으로 평가된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VC 신규 투자 중 우선주 비중은 67%에 달했다. 2017년 50.5%에서 2021년 73.4%까지 오른 뒤 다소 줄었지만, RCPS를 포함한 우선주 투자는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업계는 스타트업 투자에서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 RCPS인 만큼, 우선주 투자 대부분이 RCPS일 것으로 본다.
특히 RCPS의 핵심인 전환권(C)은 투자자에게 강력한 안전판이 된다. 일반적으로 우선주는 보통주와 1:1 비율로 전환되지만, '전환비율 조정(리픽싱·Refixing)' 조항이 있다면 투자자는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만약 투자자가 1억원을 투자해 보통주 1만주를 받기로 했어도, 기업가치가 하락하면 전환비율이 1:2로 조정돼 2만주를 받는 식이다. 결국 스타트업 창업자는 두 배의 지분을 넘겨야 하는 탓에 무리한 외형 확장을 시도하다가 재무 악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상환권(R)도 스타트업에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 버킷플레이스처럼 해외 진출이나 글로벌 투자 유치를 추진하는 기업은 K-IFRS 전환을 통해 투명성을 높이고 시장 신뢰를 확보하려 하지만, RCPS가 부채로 인식돼 오히려 재무 건전성이 악화한 것 같은 착시 효과가 일어나 신뢰도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2019년 인터넷은행과 증권업 진출을 추진할 당시 회사 자본금의 75%가 RCPS였는데, 금융당국은 이를 실질적 부채로 판단하며 자본 안정성을 문제 삼았다. 비바리퍼블리카는 이후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상환권을 삭제하고 RCPS를 전환우선주(CPS)로 변경했다. CPS는 K-IFRS 기준에서 자본으로 인식된다. 이를 통해 금융당국 인허가를 받아 2021년 토스뱅크 출범에 성공했다.
또한 상장사나 상장예정사는 K-IFRS 적용이 필수인데, 이 기준에서는 RCPS를 자본으로 보는 K-GAAP과 달리 부채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상환권이 투자금 회수를 보장하므로, 경제적 실질이 부채와 유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거래소는 상장 예비심사 과정에서 RCPS를 보통주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RCPS를 유지한 채 상장할 경우, 회계 기준 변경이나 상장 이후 부채 인식 확대로 재무 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호경 기자 hocan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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