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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가혹한 검찰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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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식 수사', '트럭 기소' 관행
희비극 연상시키는 공수처까지
'절제'를 모르는 수사기관들

[시시비비] 가혹한 검찰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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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검찰 특수부는 한동안 명성이 자자했다. 1970년대 후반 록히드 스캔들 수사로 '살아 있는 권력'이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법정에 세운 도쿄지검 특수부의 수사 비화(秘話)를 엮은 책이 우리나라에도 소개됐다. 일본 언론 특유의 과장 어법이 조금 섞여 있겠지만, 법조 취재 기자 출신 저자는 도쿄지검 특수부에 '최강의 수사집단'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수사를 지휘한 이토 시게키 당시 검사총장(검찰총장)의 모토는 "거악(巨惡)을 잠들게 하지 말라." '거악 척결'은 한국 검사는 물론 정치인들이 여전히 즐겨 쓰는 말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일본 언론은 더 이상 '최강의 수사집단 특수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10여 년 전 또다른 법조 기자가 쓴 책 제목이 '특수 붕괴'(이시즈카 겐지 지음)였다. 저자는 수사 베테랑들의 입을 빌려 특수부 신화(神話) 붕괴의 현장을 전했다. '(언론에 정보를 흘려 여론을 조작하는) 극장식 수사에 골몰한다' '정보의 이면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아마추어리즘' '수사의 고수는 사라지고 추정과 의심을 버무려 사건을 짜맞추기만'….

책이 나오고 몇해 뒤 오사카지검 특수부에서 터진 증거조작 사건과 도쿄지검 특수부의 카를로스 곤 닛산 CEO 수사 때 불거진 '인질 사법' 논란까지, 특수부의 추락은 끝이 없었다.


주제넘을지라도, 이제 우리 수사기관의 현주소를 얘기하고자 한다. 언론에 정보를 흘려 여론을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극장식 수사 방식은 '노무현 수사' 이래 검찰의 전매특허였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전직 대법원장 수사는 어땠나. 의심이라는 씨줄과 추정이라는 날줄을 엮어 만든 소설 같은 공소장에, 복사하는 데만 수천만 원이 든다는 수사기록으로 만들어 낸 ‘트럭 기소’의 결과는 1·2·3심 모두 무죄였다. 압수 수색 수십 차례, 소환조사 연인원 수백 명이라는 대기업 회장 수사는 ‘위법 수집 증거’ 문제로 1·2심 무죄가 선고되며 "검찰 교본에 남겨 두고두고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도 또 대법원까지 끌고 가겠다고 한다. 이것은 법이 아니라 폭력이다.


'놀고먹는다'는 말을 듣던 공수처가 뛰어들어 벌인 대통령 수사는 한편의 희비극(喜悲劇)으로 끝날 위기에 처해 있다. 내란 혐의 대통령 체포라는 장중한 테마로 출발했으나, 지금 헌법재판소와 법원과 검찰은 '공수처 흔적 지우기'에 여념이 없다. 법원은 적법 절차 문제를 지적하며 공수처가 구속한 대통령을 석방하라고 했고, 검찰은 "공수처 말고 (내란죄 수사권을 가진 게 분명한) 경찰의 고발이 여러 건 있었기에 공소유지는 문제없을 것"이라고 하고 있다. 헌재는 "공수처 수사기록은 탄핵심판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고 했다.

공수처는 '영장 쇼핑' 의심을 모면하려고 내란 수사기록 일부를 일부러 누락해(변조) 검찰과 법원에 보냈다(행사)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은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일본 검찰의 화양연화 시절을 열었던 록히드 사건 주임검사 요시나가 유스케(검사총장 역임)는 "검찰은 도랑에 고인 오물을 청소할 뿐, 그곳에 맑은 물이 흐르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 민주주의를 존속 가능케 하는 핵심 규범이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이듯, 수사권 행사의 요체는 '절제'라는 것을 일깨운다. 실력은 아마추어이면서, 절제할 줄 모르고 권한을 남용하는 수사기관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이명진 사회부장





이명진 기자 mjlee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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