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방위비 압박에 유럽국가 호응
관세인상 맞대응 차원에 방위비 증액 확실시
유럽이 뭉치고 있다. 미국의 방위비 증액 압박에 못 이겨 국방비를 대폭 늘리고 있는 가운데 방위산업 분야까지 손을 맞잡는 모양새다. 유럽국가들이 방산 생산시설을 늘릴 경우 ‘K-방산’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2일(현지시간)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첫 통화를 했다. 루비오 장관은 나토 동맹 회원국들이 안보를 미국에만 의존하지 않고 더 많은 예산을 국방비에 투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화상 연설에서 나토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에서 5%로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토·EU “국방비 늘려 방산 시설 증설해야”
유럽은 일단 호응하는 모양새다. 관세 인상을 피하기 위한 맞대응 차원으로 보이지만 국방비 증액은 확실해 보인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22일(현지시간) 엑스(X)를 통해 "유럽이 국방비 지출을 늘리고 대서양의 방위산업 생산을 증강하면 우리 모두가 더 강해진다"고 밝혔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 역시 같은 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방위청(EDA) 연례 포럼 연설에서 "우리가 (국방비를) 충분히 지출하고 있지 않다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말이 옳다. 이제는 투자할 때"라고 말했다.
일부 국가들은 늘어날 국방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방위산업부터 손을 맞잡고 있다. 영국과 폴란드는 17일(현지시간) 새로운 안보 방위 조약을 체결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이날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도날트 투스크 총리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방위산업간 관계 심화를 포함한다"고 밝혔다. 그는 "영국은 지난 3년간 폴란드와 80억 파운드(약 14조원)의 방위 계약을 맺었다"며 "이제 브리스틀에 공동 프로그램 사무소를 신설해 폴란드에 차세대 방공 시스템 제공을 위한 40억 파운드(약 7조원) 파트너십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 공동개발·생산 위해 협력
프랑스와 독일은 지난해부터 차세대 주력 전차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2040년까지 독일의 레오파드2와 프랑스의 르클레르 전차를 대체하는 게 목표다. 주지상전투시스템(MGCS)개발사업으로 불리는데, 작업 배분 방식에 대한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양국은 합작 방산업체인 KNDS에 더해 독일 라인메탈, 프랑스 탈레스 등 방산업체를 프로젝트에 참여시켜 50 대 50으로 업무량을 배분하기로 했다. KNDS는 독일 크라우스-마파이 베크만(KMW)과 프랑스넥스터 시스템스(Nexter Systems)가 2015년 7월 합병계약을 맺어 그해 말 설립됐다.
유럽의 방산 분야 결속은 K 방산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유럽연합(EU)은 약 20%인 EU 역내 무기 구입 비중을 2035년 60%로 올리기로 했다. 실제 영국은 지난해 차기 자주포 도입 사업에서 독일 KMW사의 차륜형 자주포 ‘RCH-155’를 선택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K-9 자주포의 가성비와 업그레이드 버전(K9A2)의 성능을 앞세우며 수년간 공을 들였지만, 독일의 견제를 이겨내지 못했다. 노르웨이도 2023년 차기 전차 사업에서 한국의 K2 ‘흑표’ 전차 대신 독일의 ‘레오파르트 2A7’ 전차를 구매하기로 했다.
독일, 헝가리·우크라이나에 전차 생산기지 신설
유럽의 방산 협력은 곧장 무기공장 증설로 이어졌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연간 5∼10대 생산에 그쳤던 K2 전차 경쟁 모델 ‘레오파르트’ 전차의 생산 시설을 가장 먼저 확대하고 나섰다. 레오파르트 생산 기업 라인 메탈은 헝가리에 전차 생산 기지를 새로 짓기로 했고, 우크라이나에도 장갑차 링크스(Lynx) 생산 시설을 최근 완공해 가동에 들어갔다. 국산 무기 최대 수입국인 폴란드는 자체 탄약 생산 시설 확충을 위해 예산 1조 원을 배정했고 우크라이나도 자체 포탄 생산 시설 확충을 끝냈다.
다만, 걱정은 있다. 돈이다. EU 내부적으로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채권인 ‘유로본드’ 발행, 방위기금용 예산 조성, 코로나19 팬데믹 피해 복구를 위해 조성됐으나 사용되지 않은 잔여 기금 전용 등 다양한 방법이 거론된다.
문제는 돈, 투자금액 놓고 조율 힘들 수도
그러나 유럽의 전반적 경제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에서 회원국들이 기여금을 늘리거나 빚을 내 무기 곳간을 채우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회원국들이 적지 않다. 민감한 예산 문제일수록 27개국 간 합의 도출은 더 어려울 수 있다. ‘메이드 인 유럽’을 고집하는 분위기도 논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 2025∼2027년 15억 유로(약 2조 3000억원)의 예산 투입을 골자로 한 ‘방위산업프로그램’(EDIP)이 대표적이다.
EU 전문매체 유락티브는 "자금 지원 기준을 두고 기약 없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EDIP 기금을 미국, 튀르키예, 이스라엘, 한국 등 외국기업 제품 구매에도 지출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라고 내부 문건을 인용해 전했다.
‘K 방산’ 공동개발·생산 틈새 공략 노려야
방산 전문가들은 유럽과 손잡고 공동개발과 생산시설 확대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화그룹이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 ‘코리아 체어’를 신설하며 글로벌 방산 외교를 본격화하듯이 발 빠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종하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교수는 “유럽국가들과의 무기체계 공동으로 연구·개발하거나 생산을 확대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는 “유럽의 결속은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경쟁 심화를 불러올 것이고, 생산능력과 납품 경쟁력에 비교우위를 가진 K-방산 수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방산협력 모델을 다각화해 글로벌 시장 진입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도 “전통적인 방산 선진국 유럽국가들이 지역 안보를 명분으로 글로벌 방산시장에서 K-방산을 견제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K-방산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강조하는 우방국과의 국방협력 기조에 맞춰 글로벌 공급망(GVC) 연대와 공조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양낙규 군사 및 방산 스페셜리스트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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