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물길을 바꿔라]③첨단기술은 中에 밀리는데 자금은 부동산으로…'자원 배분 왜곡' 금융 구조 혁신해야
12대 전략기술 모두 중국에 열세…금융 역할 재정립 시급
미·중·유럽은 보조금·펀드 총동원…기술 경쟁, 자본 경쟁으로 확산
부동산 쏠림 여전한 한국 금융…"생산적 투자로 자금 흐름 바꿔야"
글로벌 첨단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국가 간 경쟁이 '기술 전쟁'을 넘어 '자본 전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금융은 여전히 부동산에 자금이 쏠린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해 혁신 산업으로의 자금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정된 자원의 왜곡된 배분 구조를 바로잡고, 자본의 물길을 생산적인 분야로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2개 전략기술 모두 中에 밀려…기술 격차 아닌 '자본 격차'
26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말 보고한 '2024년도 기술 수준 평가'에서 한국은 12대 국가전략기술 가운데 중국을 앞선 분야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 기술 보유국인 미국을 100%로 봤을 때 수소 분야만 80.0%로 중국과 동일했을 뿐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인공지능(AI) 등 나머지 11개 분야는 모두 중국에 뒤처졌다.
세부적으로는 이차전지 분야에서 2022년 세계 1위였던 한국이 2년 만에 중국에 역전당하며 0.2년의 격차가 발생한 것으로 평가됐다. 우주항공·해양은 중국보다 5.1년, 양자는 3.3년, 첨단바이오는 1.3년, 인공지능(AI)은 1.2년의 격차로 벌어졌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역시 중국에 0.1년 뒤처진 상태다.
대부분의 전략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중국에 밀린 배경에는 단순한 기술력 차이를 넘어, 국가 차원의 자본 동원 능력 격차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중국 제조 2025' 전략 아래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 국가 자본을 집중 투입해 왔으며, 최근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제15차 5개년 계획'을 발표한 뒤 AI 등 첨단산업 중심의 경제 구조 설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 역시 정부 보조금과 민간 금융을 결합해 기술 경쟁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2022년 칩스법을 통해 반도체 산업에 총 527억달러 규모의 정부 보조금을 지원했고, 최근에는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빅테크뿐 아니라 사모펀드·은행 등 금융권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방식으로 대규모 투자에 참여하고 있다. 독일도 300억유로 규모의 독일펀드를 조성해 이를 마중물로 민간 투자를 1300억유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 역시 지난해 말 국민성장펀드를 출범시키며 정부·정책금융·민간 자금을 합쳐 총 150조원 규모의 산업 지원에 나섰다. AI·반도체·바이오·방산·에너지 등 전략 산업 전반에 초저리 대출과 지분투자 방식 등으로 장기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금융을 통한 산업정책을 강화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90%…"생산적 금융으로 자본 물길 바꿔야"
그러나 혁신 산업 투자에서 민간 금융의 역할은 여전히 제한적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해외에서는 신용대출과 벤처대출 등 위험 분담형 금융이 활성화된 반면 한국은 담보 중심 가계대출 관행과 위험 회피적 금융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특히 금융의 부동산 쏠림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0.2%로, 전 세계 주요국 가운데 캐나다(100.0%)를 제외하면 사실상 최고 수준이다. 글로벌 평균(57.3%)도 크게 웃돈다. 가계자산 중 부동산 비중 역시 2023년 기준 6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2.9%)을 크게 상회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금융사들은 담보 대출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해왔으나, 결과적으로 자금이 기업 투자나 혁신 산업으로 흐르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강화된 보수적인 여신 관행과 건전성 규제도 이러한 흐름을 심화시킨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자금 배분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미래 산업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기술 개발부터 양산까지 막대한 장기 자금이 필요한 만큼, 정책금융뿐 아니라 민간 금융의 역할 확대가 필수적이란 것이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중국은 AI 중심으로 정책 방향을 재설계하며 부동산 금융을 억제하고 제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부동산에 자금이 쏠릴 경우 가격 하락 시 위험이 커지는 반면 기업으로 흐르면 지속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산적 금융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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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중소 벤처기업 대출이나 혁신 산업 투자에 대한 위험가중자산(RWA) 규제 완화, 은행의 비금융회사 주식 투자 확대 허용 등 정부의 규제 완화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이 교수는 "건전성 규제를 유지하면서 은행에 위험 분담 투자를 확대하라는 것은 상충된 목표"라며 "최근 대형 금융사고와 관련해 은행의 RWA 부담을 완화하는 등 정부가 다양한 유인책을 내놓고 있지만, 생산적 금융이 안착하려면 보다 과감한 규제 완화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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