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공급부족 문제 심각한데
국토부 주택공급 정책 차질
환율·주식 널뛰는데
집값까지 치솟으면 국민 삶 피폐해져
식물 행정부 꼬리표 떼기 힘들겠지만
국토부가 할 일 해야
박살 난 국가 신뢰 조금이라도 회복
"분양 날짜가 없네요?" 지난주 한 대형건설사가 낸 분양 보도자료를 보고 나서 자료를 쓴 직원에게 되물었다. "원래 다음 주 금요일부터 시작하려 했는데 정치 상황이 어찌 될지 몰라서 일부러 안 썼어요." 탄핵 정국에서 성급히 날짜를 잡았다가 자칫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날까 불안해 못 박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이제 첫발 떼나 싶었는데 웬 날벼락이…." 부동산 커뮤니티는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 주민들의 걱정으로 시끌시끌하다. 사업이 일정대로 진행되려면 국회가 ‘재건축·재개발 촉진 특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래야 절차가 간소화되고 용적률도 완화된다. 하지만 여아 대립 탓에 모든 법안 논의는 멈춰 섰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부동산 시장에 불안감이 가득하다. 올해 부동산 시장 키워드는 ‘공급 부족’이었다. 지난여름 서울 집값 폭등도 새 아파트 공급 가뭄이 닥칠 거라는 예측에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는 모든 역량을 주택 공급에 쏟았다. 정부는 올해 1월 ‘30년 된 아파트,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착수해 도심 공급 확대’부터 시작해 11월까지 한 해 동안 공급 관련 자료만 28번 내놨다.
이런 흐름은 비상계엄 사태 다음날인 지난 4일 뚝 끊겼다. 국토부는 이날 ‘공공주택 실적 및 계획’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공공주택이 점점 시장에 풀리니 우려 안 해도 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그날 출근하자마자 기자들에게 브리핑 취소 문자를 보냈다.
예상 못 했던 사태에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고 집값이 떨어질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던 8년 전에도 그랬다.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던 2016년 12월, 한국부동산원이 조사한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격은 0.62%(전월 대비) 떨어졌다. 이듬해 1월까지도 하락세(-0.28%)가 이어졌다. 이번 여파는 오는 12일 부동산원이 발표할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장의 전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토부의 주택 공급 정책 차질이다. 탄핵 정국에도 공급이 없으면 가격은 치솟는다. 박 전 대통령이 물러나던 때도 집값 하락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탄핵 심판이 이뤄졌던 2017년 2월부터 오히려 아파트값이 올랐다. 그 해 1년 동안 서울 아파트값은 무려 10.6%나 뛰었다.
돌이켜보면 2017년 부동산 시장도 공급부족 우려가 지배했었다. KB부동산의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을 보면 2017년 상반기 2만가구에 달했다가 하반기에 1만4000가구로 떨어졌다. 하락 추세는 2018년 상반기까지 이어졌다. 당시 부동산 전문가들은 "서울은 공급부족으로 집값이 쉽게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불행히도 내년부터 닥칠 공급부족은 그때보다 훨씬 심각하다. 올해 하반기 1만9000가구였던 서울 입주물량은 2025년 상반기 1만8000가구, 하반기 1만2000가구로 떨어진다. 2026년에는 상·하반기 다 합쳐 1만가구도 안 된다. 조사를 시작한 199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대출 규제 강화로 집값을 잡을 수 있지만 새 아파트가 이 정도로 없으면 약발도 한계가 있다.
환율과 주가가 널뛰는 상황에서 집값까지 불안정하면 국민들의 삶은 더 피폐해진다. 민생은 정책에 달려있고 정책은 정치가 만드나, 당분간은 정치에 무엇도 기대하기 힘들다. 식물 행정부라는 꼬리표를 떼긴 힘들겠지만 지금은 국토부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실행해야 할 때다. 그렇게 해야 박살 난 국가 신뢰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다.
심나영 건설부동산부 차장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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