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상 직장내괴롭힘 적용가능여부 논란
아이돌 그룹 뉴진스가 ‘따돌림’과 ‘무시’ 등의 피해를 호소하면서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 진정이 접수되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1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뉴진스 팬이라고 밝힌 A씨는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서부지청에 뉴진스가 11일 라이브 방송을 밝힌 따돌림이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것이 아닌지 조사해달라는 민원을 넣었다. 뉴진스의 멤버 하니는 11일 라이브 방송에서 "얼마 전 메이크업을 받는 곳에서 다른 아이돌 멤버와 매니저분을 마주친 적이 있는데 매니저님께서 제 앞에서 다 들릴 정도로 ‘(하니를) 무시해’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며 "다른 멤버들도 그런 일을 당할까 봐 무서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A씨는 이를 직장내 괴롭힘이라고 봤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의 행위요건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것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을 것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에 해당한다. 이 중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것’과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을 통해 ‘상사나 다수 직원이 특정한 직원과 대화하지 않거나 따돌리는 이른바 집단 따돌림, 업무수행과정에서의 의도적 무시·배제 등의 행위는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간 행위’라 설명하고 있다.
멤버 민지는 "하니가 겪었던 이야기를 듣고 정말 충격을 받았다"며 "어떻게 한 팀의 매니저가 지나가면서 다 들리게 ‘무시하라’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는지"라고 했다. 또 "회사에 말씀을 드렸는데도 회사에선 아무런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고 그쪽 팀에서는 사과는커녕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다"며 "우리를 지켜줄 분이 없어 너무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대표 변호사는 “매니저가 뉴진스의 멤버 하니의 인사를 무시하고, 다른 이들에게 뉴진스 맴버들의 인사를 무시할 것을 주문했다면 이러한 행동은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매니저가 소속이 하니의 소속사인 어도어가 아니라 하이브라는 점이다. 사실상 같은 사주 하에 속해 있는 일종의 기업집단이지만 엄밀히 말해 회사가 달라 법이 정한 직장내괴롭힘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또 아이돌의 경우 일반 직원이 아니라 계약을 맺고 일하는 개인사업자 성격이 있다. 윤 변호사는 "만약 뉴진스 멤버들이 일반적인 근로기준법에 적용받는 근로자라고 가정한다면 같은 회사 안에서 다수의 직원으로부터 '무시해'라는 언사 등을 통해 따돌림을 당했고 이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직장내괴롭힘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뉴진스는 어도어 소속으로 매니저와 같은 회사가 아니다. 또 이미 설명한 것처럼 일반 직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멤버들은 또 방송에서 최근 데뷔 전의 사적인 기록들이 기사를 통해 공개된 사실을 언급하며 "정말 놀랐다. 저희를 보호해야 하는 회사에서 이런 자료들을 관리를 못 하고 유출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됐다"며 "대표님, 부모님들과 하이브에 보호 요청을 했지만 하이브는 묵살했고, 그 와중에 (민희진) 대표님은 해임되셨다. 앞으로 누굴 믿고 의지해야 할지 정말 막막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뉴진스에 대한 하이브 사내 따돌림 의혹은 과거에도 제기됐다. 뉴진스 멤버들의 부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뉴진스 멤버들의 인사를 여러 차례 받아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하이브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방 의장이 안면인식장애가 있을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실제로 뉴진스 멤버들이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고 해도 이를 직장내괴롭힘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직장갑질119는 일반 근로기준법 적용 사업장에서 괴롭힘 행위를 사용자(회사 대표)가 인지하면 즉시 가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징계와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를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만약 사용자마저 이를 묵과한다면 ‘조치 의무 불이행’으로 사용자는 과태료를 물 수 있고 형사처벌도 가능해질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뉴진스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있을지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 직장갑질119 측은 소속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소속사의 지휘, 감독을 받으며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뉴진스 멤버들도 일응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정확한 판단은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전까지 고용노동부는 연예인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봤다. 정직원이 아닌 계약관계에 있는 자영업자로 본 셈이다. 이에 대해 윤 변호사는 “뉴진스와 같은 아이돌이 전속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이들의 근로자성을 부정하거나 이들을 노동관계법령 사각지대에 계속 남겨두는 것이 적절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회사와 아티스트가 실제 ‘동등’한 관계가 되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걸리며 이 과정에서 회사는 상당 기간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며 아이돌에게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게 된다”고 짚었다. 연습생이나 막 데뷔한 아이돌의 경우 회사와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권리를 지키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아이돌처럼 계약을 맺고 일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직장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했을 때 회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 판례도 있다. 법원은 2020년 특수고용직인 캐디로 일하던 배모씨가 상사인 캡틴의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서 가해자인 캡틴과 이를 방치한 회사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근로기준법상 캐디가 특수고용직으로서 근로자임을 인정받지 못했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본 판결이다. 법원은 당시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사람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켰다면 그 피해자가 반드시 근로자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 가해자인 캡틴과 이를 방치한 회사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했다.
물론 뉴진스의 경우 매니저 등과 같은 회사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이 판례를 적용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하이브와 산하 자회사 간, 직원 간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가 직장내괴롭힘 여부를 가르는 잣대가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다. 쉽게 말해 자회사들이 하이브 내 팀의 성격이 있고, 하이브 직원들과 자회사 직원 간 상하 관계가 분명하고, 업무상 묶여 있는 정도가 강하다면 직장내괴롭힘이 성립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문혜원 기자 hmoon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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