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파묘’로 웃지만 마음 무거운 유해진…"얼마만에 극장의 맛"
배우 유해진 인터뷰
영화 ‘파묘’ 장의사 영근役
“장재현 감독 신선한 시나리오에 호기심”
독립운동가 이름 ‘항일’ 코드 촬영하며 알아
“‘파묘’가 잘 돼서 좋지만, ‘도그데이즈’가 계속 마음에 밟혀요. 영화를 잘 만드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만감이 교차하네요.”
배우 유해진(54)은 복잡해 보였다. 영화 ‘파묘’ 개봉을 앞두고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그는 가장 먼저 영화 ‘도그데이즈’를 챙겼다. 그는 “마음이 무겁고, 또 무섭다”며 솔직한 마음을 꺼냈다. 평소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말 한마디 가볍게 날리는 법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로 인터뷰 테이블에 앉았다.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 ‘파묘’(감독 장재현)는 흐름을 제대로 탔다. 개봉 3일 만에 100만, 4일 만에 200만 관객을 모으며 극장 분위기를 바꿨다. 첫 주말 기세가 좋았다. 그는 “경사다”라며 “‘불호’도 있지만, 그보다 ‘호’가 많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민망한 듯 얼굴을 매만지며 “지난 주말 ‘파묘’ 보기 좋은 날씨더라. ‘쨍’했으면 관객이 외곽으로 나갔을 거고, 안 좋았으면 집에 머물렀을 텐데 딱 좋았다”고 했다.
반짝 흥행에도 활짝 웃을 수 없는 이유
유해진은 한 달 동안 극장을 지키고 있다. 그가 주연한 영화 ‘도그데이즈’(감독 김덕민)가 지난 7일 개봉해 설 연휴에도 부지런히 무대인사를 돌았다. 흥행작 ‘공조1,2’를 만든 제작사 JK필름과 의기투합한 영화였지만, 아쉽게도 관객 36만여명을 모으는 데 머물렀다. 지난 주말부터는 ‘파묘’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파묘’가 잘 돼서 좋지만, 마음이 안 좋아요. ‘도그데이즈’ 팀도 현장에서 다 같이 고생했는데. 연출자 김덕민 감독님이랑 프로듀서, 제작한 윤제균 감독님 모두 애썼기에 아쉽고, 마음이 무거워요. 영화가 잘 되기 쉽지 않네요. 계속해도 잘 모르겠어요. 익숙해지는 날이 올까요?”
‘파묘’ 반응이 좋다고 해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던 유해진이다. 며칠 사이 극장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며 한숨을 연거푸 내뱉었다. 그는 “만약 이번에도 좋은 결과가 아니었다면 미칠 지경이었을 것”이라고 털어놓으며 “사람도 (사주)팔자가 있듯이 영화도 다 팔자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마 만에 영화의 맛, 극장의 맛을 느껴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그린다. 유해진은 예를 갖추는 베테랑 장의사 영근 역을 맡아 데뷔 후 처음으로 오컬트 장르에 도전했다. 그는 “특정 장르에 도전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라며 “장재현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 땅에 관한 이야기를 장르와 접목해서 풀어낸 것이 신선했다”고 했다.
“요즘 신선한 시나리오가 많지 않아요. 받아보면 대부분 비슷하죠. 그런데 ‘파묘’를 보고 ‘와’ 했어요. 장재현 감독의 천재성이 느껴졌어요. ‘영화적인 영화’라는 인상을 받아 좋았어요. 감독이 하려는 이야기가 영화로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했고, 체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어요.”
쉼표 같은 역할…촬영하다 발견한 ‘항일’ 코드
유해진이 연기한 영근은 우뚝 솟구친 배역은 아니다. 메인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배역이 아니라 등장인물 간 앙상블을 이룬다. 관객 마음을 대변하며 이야기를 끌고 가는 ‘진행자’ 같은 역할이다.
그는 “‘작품에서 뭔가를 해 보이겠다’는 배역은 아니었다. 꿀을 찍지 않아도 고소한 맛이 나는 백설기 같은 역할”이라고 비유했다. 이어 “무지개떡처럼 고유의 색을 지닌 최민식, 이도현, 김고은 사이에서 아이보리색 같은 빛을 내는 인물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객 마음도 대변해준다. 한 번씩 다른 인물들을 슬쩍 밀어주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터지는 웃음이 좋았어요. 억지로 강요하는 웃음이 아닌, 상황에서 발생하는 웃음을 좋아해요. 영근이 된 유해진만이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봤어요. 작품에서 늘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적절한 쉼표’라고 봤어요. 오버하지 않고, 작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편하게 쉴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봤죠.”
영근은 조선 말기 독립운동가 고영근 선생과 이름이 같다. 풍수사 김상덕(최민식 분), 무당 이화림(김고은), 무당 윤봉길(이도현), 무당 오광심(김선영)의 이름도 모두 실제 독립운동가의 이름이다. 인물들의 차량 번호도 ‘1945’, ‘0301’, ‘0815’ 등 광복절과 삼일절 등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항일’ 메시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몰랐다”고 했다. 이어 “촬영 도중 장 감독님과 이야기하다 알았는데, 놀랍고 재밌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가 잘 되려면 다양한 해석을 통해 이야깃거리들이 만들어지는 거 같다”고 말했다.
‘문이 열리네요, 유해진 들어오죠’
지금은 ‘유해진 시대’다. 관객들은 유해진을 경계하지 않는다. 최근 개봉한 ‘올빼미’(2022) ‘달짝지근해: 7510’(2023) 등이 사랑받았다. 극악무도한 인조부터 사랑에 빠진 순수한 연구원까지, 그가 등장하면 관객은 여지없이 마음의 문을 연다. 탁월한 연기력으로 관객의 마음을 뺏고 제 편으로 만들어버린다. 탄탄한 연기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보석 같은 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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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뭘 해도 좋게 봐주시는 게 아닐까요? 그동안 다행히 좋은 작품을 만나온 덕에 신뢰가 생긴 거 같아요. 대중에게 각인된 긍정적인 이미지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요. 최근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요. ‘유해진, 이번에는 모르겠는데?’ 하실까 봐 걱정이에요. 매 작품 뭘 던져줘야 하나 고민하죠. 작품양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연기를 오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시각을 가지려고 해요. 훌륭한 연기로 보답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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