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흔히 쓰는 유행어 중에 ‘어그로’, ‘어그로를 끈다’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여러 명이 접속해서 하는 온라인 게임의 채팅창에서 흔히 쓰이며 퍼진 말이고, '악화시키다, 짜증 나게 만들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 aggravate에서 유래했다고 나온다.
의미가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아 더 자세히 검색해보니 "관심을 끌고 분란을 일으키기 위해 인터넷 게시판 따위에 자극적인 내용의 글을 올리거나 악의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긍정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메시지 발신자가 단 몇 초안에 독자, 시청자, 청중을 낚으려 안간힘을 쓰는 세태를 담은 유행어라 할 수 있겠다.
최근 민주당이 현수막 문구로 제대로 어그로를 끌었다. 민주당 사무처는 지난 17일 ‘2023 새로운 민주당 캠페인-더 민주 갤럭시 프로젝트’의 티저라며 지정한 문구로 현수막을 걸라고 시·도당에 공지했다. 예로 든 4개의 현수막 시안에는 ‘정치는 잘 모르겠고, 나는 잘 살고 싶어’, ‘경제는 모르지만, 돈은 많고 싶어’, ‘혼자 살고 싶댔지 혼자 있고 싶댔나’ 등의 문구가 들어 있었다.
현수막 문구가 공개되자 여당은 물론 야당 내부에서도 20·30세대를 정치, 경제에 무관심하면서 개인의 편안함만 추구하는 이기적 집단으로 청년 세대를 폄하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논란이 커지자 책임자인 당 홍보위원장 한준호 의원은 지난 19일 "민주연구원에서 준비해온 캠페인에 대해 진행하는 업체에서 예로 든 것"이고 "업무상 실수는 맞지만, 당직자나 당이 개입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발뺌했다.
결국, 나흘 만인 20일 민주당은 오는 23일 청년 핫플 연남동에서 열려던 총선 홍보 행사를 취소했다. 조정식 사무총장은 "저 광고는 외부 전문가들의 파격적인 홍보 콘셉트를 담은 안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당에서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 "의도와 관계없이 국민과 당원들이 보기에 불편했다면 명백한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이건 티저, 맛보기니 뒤로 이어지는 의미심장한 무엇인가가 더 있었지 않을까, 유명한 책 제목을 패러디한 구호로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애교 정도로 봐주려고 해도 포용의 범위를 넘어섰다. 청년 표심을 겨냥한다면서 청년을 정치 문외한으로, 경제 개념 없이 돈만 밝히는 비호감 무리로 매도한 현수막을 내건 정치인들의 엇박자 감수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 청년층은 제 살길 외에는 무지하고 무관심하니, 도발해서 관심을 끌거나 단발성 포퓰리즘으로 호감을 사서 표심을 잡을 대상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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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민주당이 패러디한 것으로 짐작되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작가 백세희는 이 책에서 "나는 이제 화살을 상대에게로 돌릴 줄 안다. 네까짓 것 때문에 나를 파괴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한다. 내 삶과 나 자신이 그렇게까지 보잘것없고 하찮지는 않다고, 인지한다"고 썼다.
지금 한국의 청년 다수는 경제적 불평등과 소외, 경쟁의 심화, ‘너의 실패는 너의 무능과 노력 부족 탓’이라는 능력주의 논리 하에 내 살길은 내가 찾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청년의 입장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이들을 돌보고 성장을 독려할 방법을 고민하는 정치권의 모습이 아쉽다. 정치권은 결국 청년을 '네까짓 것'으로 만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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