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미국 일상 속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미국인들은 여전히 내일이 없는 것처럼 돈을 쓰고 있다.”
지난주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기사 제목이다. 기준금리를 무려 5%포인트 이상 끌어올린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강도 긴축, 높은 인플레이션, 고갈되는 초과 저축, 서서히 확인되는 노동시장 냉각까지…. 이쯤이면 소비자들의 지출이 줄어들 때가 됐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하지만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3분의2를 차지하는 소비지출은 통계상으로 여전히 탄탄하기만 하다. 8월 가계지출은 전년 대비 5.8% 증가해 물가상승폭을 훨씬 앞질렀다. 대체 무슨 일일까.
지난해 Fed의 고강도 긴축이 시작되자 시장에서는 올해 중반 미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잇따랐다. 하지만 실제 확인된 것은 이른바 ‘체험 경제(the experience economy)’의 붐이었다. 집을 장만하거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저축하기보다는, 콘서트, 여행, 미식활동 등 나를 위한 경험에 돈을 쓰는 미국인들이 급증한 것이다. 이에 대해 WSJ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거치며 건강, 직장, 일상에 대한 장기계획의 불안정성을 느낀 이들이 ‘나중에 하지 못할 수 있는 것’,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들에 지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소비 추세를 확인시키는 또 다른 신조어는 ‘테일러노믹스(Taylornomics, 테일러+경제)’다.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올 상반기 전국 투어에 나서자, 공연이 열리는 지역마다 몰려든 관광객으로 인근 호텔, 음식점 등이 호황을 맞이하는 등 경제 활성화 효과가 나타났다. 테일러발 경제적 효과는 이후 Fed의 경기동향보고서인 베이지북,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연은)의 보고서에도 담겼을 정도다. 네덜란드 ING는 이달 초 공개한 보고서에서 테일러노믹스, 영화 바비 열풍 등을 언급하며 "엔터테인먼트가 올여름 미 경제를 활성화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소비천국’ 미국에서 이러한 소비가 지속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우선 여행, 콘서트 등 최근 미 경제를 떠받친 체험 경제가 일회성 요인에 주도되는 경향이 있어서다. 여기에 팬데믹 초과 저축이 고갈되고 있고, 신용카드 대출 등 빚의 무게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더한다. 미국인들의 신용카드 채무는 이미 1조달러를 돌파,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연체율도 10여년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뉴욕 연은은 과거 신용카드 연체가 급증한 5번의 사례 중 3번이 경기침체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무디스 인베스터스 서비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소비자들의 부채 질이 떨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S&P글로벌은 "강력한 노동시장에 힘입어 소비가 상당히 탄력적"이라면서도 "청년층, 저소득 가구에서는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더욱이 이달부터 미국에서는 학자금 대출 상환도 재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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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 저축이 고갈되는 상황에서 여전히 활발한 소비, 그리고 사상 최고치를 찍은 신용카드 채무 기록의 조합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포브스는 전미소매연맹이 지난 8월 공개한 소비지출 관련 보고서를 소개하며 ‘맥베스’에 등장하는 두 번째 마녀의 예언을 경고처럼 덧붙였다. "이런 식으로 사악한 일이 다가온다(Something wicked this way comes)". 맥베스의 결말은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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