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37년 연기한 허준호 "속 모르는 인간, 어렵죠"
배우 허준호 인터뷰
27일 개봉 영화 '천박사' 범천役
후시녹음·충무로 세대 "시장변화 필연"
"추석 연휴에 父 허장강 산소 가야죠"
배우 허준호(59)는 3년 뒤면 연기 40년 차가 된다. 1986년 영화 '청 블루 스케치'로 데뷔해 배우가 됐다. 대학에서는 무용을 전공했지만, 연기를 업(業)으로 삼았다. 연기는 자연스러운 관심에서 시작됐다. 원로배우 고(故) 허장강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어릴 적 부친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고 했다. 추석을 앞두고 마주한 허준호는 부쩍 아버지를 떠올렸다. 부친은 그가 12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버지를 보며 배우는 '연습하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고 했다.
최근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허준호는 "아버지가 추석에 돌아가셨다"며 "연휴에 산소에 다녀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추석 때는 매년 이상하게 분위기가 가라앉는다"고 덧붙였다. 이어 "올해는 영화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감독 김성식·이하 '천박사')이 개봉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아버지 산소에 갈 수 있도록 초반 성적이 좋았으면 한다"고 말을 이었다.
"제가 작품 끝나면 멍청할 정도로 배역을 빨리 잊어버려요. 시간 지나면 대사도 잘 기억 안 나요. 아버지를 옆에서 봐서 그런 거겠죠. 일은 일이고, 생활은 생활이고. 어렸을 때 연기 연습하는 아버지 모습만 기억나요. 연습하실 때 상대 배우가 없으면 제가 들어갔어요. 그게 맞더라고요. 연습을 그렇게 하고 촬영해도 힘든 게 연기니까요."
허준호는 연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는 "연기 연습을 계속해야 한다. 아니다 싶으면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가 안 되면 되묻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완성해간다"고 말했다. 어떤 직업이든 40년 가까이 하나의 일을 한 사람을 두고 '장인'이라고 한다. 여전히 연기가 어려울까. 물으니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표현해야 하니까요. 우리가 사람 속까지 모르잖아요. 같이 자고 아침에 일어나도 속을 모르는 게 사람인데. 내가 알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죠. 타인으로 변신하고 싶은데 내 얼굴에 내 목소리니까. 분장, 조명, 연출적 도움이 필요하고요. 배우는 절대 혼자 할 수 없어요. 인간을 표현하는 작업은 어려워요. 모르는 사람이 된다는 거, 인간을 표현한다는 건 어렵죠."
허준호는 영화 '천박사'에서 인간의 몸을 옮겨 다니며 영력을 사냥하는 악귀 범천으로 분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는 "대본이 탄탄했다"며 "내용보다도 빠른 속도감이 좋았다"고 떠올렸다. 추석 영화로 기획된 '천박사'에서 배역의 기능적 역할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내용이다. 관객들이 어렵지 않도록, 잘 이해하도록 편하고 쉽게 다가가야 한다고 봤다. 그저 직진했다."
허준호는 천박사 역의 배우 강동원과 대립한다. 액션 비중은 크지 않지만, 범천이 대부분의 액션을 소화한다. 그는 "액션 때문에 도망가고 싶었다"고 앓는 소리를 했다. 그러면서도 "체력적으로 해낼 수 있을까 우려를 했지만, 이제 촬영 시스템이 바뀌어서 자신감도 생겼다"고 했다.
"예전에는 잠도 못 자고 15일 동안 밤을 새운 적도 있어요. 차에서 10분씩 쪽잠 자고. 대본이 안 나오니까. 한 동작을 열 번 이상 해야 했죠.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제 우리 수준이 높아졌어요. 순서대로 찍어주시더라고요. 촬영 기법도 발전했죠. 예전에는 선배들 앞에서 조심해야 할 것도 많았는데 말이죠. 지금은 현장에서 배우들끼리 그렇게 좋아요."
몇 살까지 액션 연기를 하겠냐고 묻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액션이요? 불러 주실 때까지 찍을게요. 평생."
"계속 일(연기)하고 싶어요. 뭔가 이루고 싶은 건 아니에요. 다만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무너지고 또 일어나고 그러면 좋겠다, 그게 제 욕심이죠. 연기는 어려운데 또 하고 싶어요. 작품 끝나면 이제 좀 쉬고 싶다가도, 좋은 대본을 보면 또 뛰어들죠. 그 마음은 솔직히 모르겠어요. 저는요, 연기하는 지금이 행복해요."
한국영화계는 숱한 변화를 겪어왔다. 후시녹음으로 대사를 입히던 때가 있었다. 영상도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시장이 커졌지만, 극장을 찾는 관객 수는 줄었다. 콘텐츠 제작은 늘었지만, 현장에서는 '죽겠다'는 푸념도 늘었다. 어느 정도 예견된 변화지만, 코로나19 이후 가속했다. 허준호는 이러한 변화를 모조리 겪어낸 세대다. 중견 영화인으로서 이를 바라보는 소회를 물었다.
"손뼉 치고 있어요.(웃음) 저는 후시 녹음 세대예요. 충무로에서 배우들이 모여 한 차를 타고 촬영하러 가던 때가 있었죠. 이제 우리 시대가 펼쳐지고 있어요. 멋지죠. 예전에 미국에서 보던 시스템이 한국에서도 이뤄지고 있구나 싶죠. K-문화 시대가 왔잖아요. 다만 홍콩의 전철을 밟지는 않길 바라죠.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돈보다 작품을 위해야죠. 집(미국)에 있으면 사람들이 우리 문화를 많이 물어봐요. 넷플릭스 '킹덤'에 출연해서인지 공항에서도 알아봐 주시고요."
허준호는 미국에서 거주 중이기에 변화를 더 체감한다고 했다. 외부에서 보는 시선이 피부로 와닿는 까닭이다. 그는 "동네 극장인 리갈 시네마가 문 닫았다"며 "미국도 극장이 자꾸 없어진다"고 말을 이었다. 배우로서 변화를 받아들이는지, 또 변화가 반가운지 묻자 "시대가 이렇게 변할 줄 알았다"고 답했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생길 당시, 선배들은 지금의 시대를 예견했어요. (필름에서) 디지털 시대가 오면서 극장이 점점 사라질 거라고 봤죠. 어렸을 때 그런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예전에는 촬영한 필름을 충무로에 맡겼는데 이제 집에서 파일로 보냈잖아요. 집집이 홈시어터가 생겼고, 앞으로 더 늘어나겠죠. OTT도 마찬가지죠."
극장의 존재 가치와 의미에 관해 물었다. 극장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이 예전만 못하다는 우려에 관해 묻자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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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는 작품이 안 좋아서 그렇겠죠. 작품만 좋다면 다시 극장으로 갈 거 같아요. 중요한 건 작품이에요. 스펙터클한 영화는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봐야 재밌잖아요. 드라마로 볼 수 있는 건 OTT로 볼 수도 있겠고. 앞으로 더 발전하겠죠. 이제부터는 관리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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