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살면서 수시로 다가오는 원하지 않은 상황과 마주쳤을 때 우리는 어떻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다독거려야 할까. 가정이나 군대, 직장, 학교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무책임하게 돌아설 수는 없지 않은가. 내 삶의 문제인데 다른 사람에게 책임 전가할 것인가, 아니면 다음 생으로 이월시킬 것인가. <찬란하지 않아도 별일 없이 산다>는 작가가 직접 겪은 몸의 언어이자 경험의 산물을 들려준다.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일상에 숨어 있는 진실을 찾아내고 지혜를 발견하는 이야기다. 글자 수 777자.
[하루천자]찬란하지 않아도 별일 없이 산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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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소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빌려준 돈보다 더 많은 그 무엇을 잃은 것 같아 언짢아지곤 했다. 더구나 어려우니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어떤 이의 말은 단순히 언짢은 감정만이 아니라 넘지 말아야 할 것을 넘은 듯 개운치 않았다.


누구에게든 어려운 일도 있고 곤란한 경우도 있고 힘든 고비도 있는 게 사람의 '살이' 아닌가. 그렇더라도 상황이 어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잘못된 것들을 그럴 수 있는 것으로 탈바꿈시켜 버린다면 살아가며 지켜야 하는 도리니 도의니 하는 것들은 무슨 의미가 있나.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누구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도리 따위는 뒷전이고 당장 급한 불을 끄기에 급급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때가 아니라 위급하고 어려운 상황이 생겼을 때 진가를 드러내는 게 아닐까.

좋을 때나 편할 때는 굳이 무엇을 지키려 노력하지 않아도 순조롭게 굴러가기 때문이었다.


나쁜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할 것인지 갈등하게 되고 그때 그 사람의 본래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법이다.


좋은 상황에서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쁜 일이 닥쳤을 때 좋은 결정을 하는 게 어려운 일이고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어려우니까 그럴 수 있다는 말은 어려우면 무엇을 지키지 않아도 허용되고 정당화된다는 말처럼 들렸다. 정상참작이라는 말도 정상을 참고한다는 것이지 잘못이 정당화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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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 따라 잘 잘못의 잣대가 달라질 수 있는 거라면 진정한 가치의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하나.


-어현, <찬란하지 않아도 별일 없이 산다>, 문학공감, 1만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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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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