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은 흉년이 들면 ‘감선(減膳)’을 실시했다. 감선은 임금이 수라상의 음식가짓수를 줄이거나, 고기를 없애거나, 식사횟수를 단축하는 명령이다. 왕 한 명이 음식을 덜 먹는다고 가난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다만 왕이 만백성의 고통을 함께하고, 절약하는 생활을 몸소 보여준다는 의미가 컸다. 신분제 사회에서도 권력자의 모범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는 사례다.
“오늘 국회 상임위 회의장이 추워서 확인을 해보니까 냉방온도가 21도로 돼 있네요. 좀 더워질 것 같지만 저희가 모범을 보입시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전날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돌연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한 뒤 내뱉은 말이다. 장 의원이 동료 의원들과 고위 공무원들을 앞에 두고 대뜸 실내온도를 지적한 데는 이유가 있다.
현행 규정상 공공기관은 여름철 실내온도가 28도로 제한된다. 1980년 범세계적인 에너지난에 대처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시민에게 권장하는 적정 실내온도 역시 26도다. 정부의 권고에 따라 많은 민간기업에서 사무실 온도를 26도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다.
민의를 논의하는 국회는 어떤 기관보다 공적(公的)이다. 그런 국회가 여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춥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에어컨을 틀었다. 2분기 전기요금이 5.3%(㎾h당 8원) 올랐다. 앞으로도 계속 오를 가능성이 크다. 서민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에어컨 없이 사는 법을 찾고 있다. 전기를 많이 쓰는 자영업자들은 울상이 됐다. 전기료가 자극하는 물가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해결책으로 에너지 절약을 내세웠던 건 다름 아닌 권력자들이다. 문을 열고 냉방을 가동하는 상점에 주의를 주고 집안의 가전제품 가동을 줄이자고 호소했다. 지난 겨울 공공기관의 말단 직원도 솔선수범을 이유로 17도 사무실에서 벌벌 떨며 일을 했다. 하물며 조선시대 왕도 어려울 땐 귀감을 보이는데, 우리 국민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에너지를 아끼는데, 권력자들에게만 모범의 자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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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이면 누가 에너지 대책을 납득하겠나. 기후위기와 에너지 대란은 국가역량을 총동원해 풀어야 하는 사회문제 아니었나. 그렇다면 권력자가 먼저 에어컨을 끄고, 재킷을 벗든 넥타이를 풀든 반소매셔츠를 입든 하라. 그게 권력자가 갖춰야 할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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