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트렌드]"마음도 동안이시네요"...젊게 사는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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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의 일이다. K-드라마를 좋아하는 캐나다 지인이 한국에 여행왔다. 출국 전 만남에서 나눈 이야기 중에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가 “한국도 고령화 국가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딜 가나 흰머리 어르신이 잘 안 보였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필자가 퀘백주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당시 주름이나 흰머리를 가진 시니어가 많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화 중 카페 안을 둘러보니 시니어세대가 다수 자리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만 봐서는 50대인지, 60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외모였다. 더불어 국내 개발팀에 의해 머리를 감기만 하면 자연스레 흰머리카락이 거뭇하게 염색이 된다던 샴푸가 등장해 시니어 사이에서 열풍이 불며 품절 대란이 일어났던 일도 생각났다. 서양에 비해 동양권은 나이들수록 젊어보이는데, '한국 시니어들은 외모 가꾸기, 패션 센스가 젊은이들 못지 않구나'라고 새삼 느꼈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로 유명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2023년에 주목해야 할 트렌드 중 하나로 ‘네버랜드 신드롬’을 꼽았다. 어린 시절로의 회귀, 나이 듦 거부, 아이처럼 놀기라는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책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유년화는 단지 일부의 취향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사고방식’, 나아가 ‘생활양식’이 되고 있다”며 과거를 추억하며 현실에서 도피하는 모습을 부정적으로 조명하는 ‘피터팬 증후군’이란 용어 대신 젊은 인생을 추구하는 모습을 가치중립적으로 바라보는 용어인 ‘네버랜드 신드롬’을 새롭게 제시했다. ‘네버랜드’는 영원히 아이의 모습으로 살기를 바라는 피터팬과 친구들이 사는 가공의 나라다. 이전에는 연령대에 따라 그에 맞는 성숙한 성인의 모습을 기대했다면, 요즘은 나이보다 어리게 사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동안이시네요’, ‘나이보다 젊게 사시네요’, ‘그 나이답지 않게 생각하시네요’는 덕담이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생애주기상 청춘도 길어졌고, 삶의 모습이 다양화됐다. 따라서 ‘이 나이쯤에는 결혼, 출산, 은퇴 등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식의 전형적인 ‘사회적 나이’ 개념이 흐려지고 있다. 성숙이든, 성장이든, 연륜이든 ‘변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따라 나를 표현하거나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취미나 취향은 더욱 중요해졌고, 이러한 현상은 실제 소비로도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다.


‘키덜트(kidult: 어린이 물건에 호감, 취향을 가진 성인)’ 현상이 대표적이다. 어린 시절 보고 자란 애니메이션을 다시 찾고 그 당시 유행하던 캐릭터들이 돌아왔다. 폭발적인 관람객 숫자를 기록한 ‘슬램덩크’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가득 차지하며 품절 대란을 불렀던 ‘공주세트’는 젊은 층부터 장년층까지 골고루 참여한 것으로 나타난다. 바쁜 일상에서 유년시절의 즐거웠던 추억들을 되살리거나, 유치한 것을 공유하면서 즐거운 것이다. 미국에서도 완구협회가 2022년 ‘올해의 성인장난감’ 부문을 신설하고 블럭 장난감 회사를 선정했다. 레고는 ‘어른들 환영’이라며 특별 마케팅을 전개하기도 했다. 영국 ‘토이월드매거진’은 블루라벨 반다이 로봇과 피규어 판매가 지난 5년간 500% 성장했다고 밝혔고, 일본에서는 어른들이 건담 프라모델 로봇 조립을 즐긴다.

나이 듦에 대한 거부 사례의 대표주자는 영화 ‘탑건 매버릭’의 톰 크루즈다. 1962년생인 그는 영화 속에서 동기생이 태평양 함대사령관이 되었지만, 여전히 현역 대령이다. 나이를 먹으면 실무자에서 관리자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그는 현장에 있고 싶어한다. 자신만의 세계를 설정하고, 나름 소신있게 산다. 그런가 하면 70대를 훌쩍 넘긴 나훈아씨나 조용필씨의 콘서트는 아직도 대단한 인기다. 그때 그시절 소녀팬이었던 5060세대는 원조 오빠부대의 기상을 뽐낸다. 시니어 팬덤 때문에 전문 팬덤학원도 생겼다. 트로트 가수 임영웅씨, 송가인씨의 열혈 시니어 팬들의 활동은 기부나 봉사와 같은 선행 경쟁으로도 유명하다. 한국이라는 공간과 문화가 설정한 ‘체면’과 그에 맞추려던 ‘연배’가 살짝 걷히면, 시니어의 마음은 젊기만 하다.


친구관계나 여가생활에도 나이 통념과 멀어지는 일들이 자주 눈에 띈다. 특히 신중년들에게 ‘아우디(아줌마의 우정 디질 때까지 가자)’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오래된 만남이라도 각자의 인생을 존중하고, 오랜만에 만나도 반갑게 위로와 격려를 하며 끝까지 우정을 지키자며, 학창시절의 우정을 확인하듯 양말을 맞추어 신는다거나 우정반지를 맞추기도 한다.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을 탈피하고 명량 만화처럼 필터를 끼우려는 분위기도 있다. 골프는 시니어세대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 중 하나이지만, 규칙이 엄격해 초반에 흥미를 갖기 어렵다. 이때 ‘골린이(골프와 어린이의 합성어)’를 위해 점수나 규칙에 연연하지 않고 동반자들과 편하고 즐길 수 있도록 ‘명랑 골프’란 것도 생겼다. 미국에서는 ‘어른들의 여름 캠프’가 열리기도 했다. 24시간 동안 자신의 직업을 말하지 않는 규칙이 있어서 인간 대 인간으로, 그저 친구가 되어 어린 시절처럼 신나게 노는 것이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참가자들이 친구가 되는 마법 같은 경험이라고들 한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 일생을 100년이라고 하면, 50세는 정오일 뿐이며, 20만~30만 시간을 더 살게 되었다. 이에 따라 나를 더 잘 알고 싶은 욕구도 높아졌다. 저출산 시대인데도 '금쪽같은 내 새끼'와 같은 육아 코칭 프로그램이 인기인 것도도 같은 맥락이다. 내 어린 시절을 이해하고 싶은 성인들, 혹은 장성한 자녀가 이해가 안되는 시니어세대 부모들이 육아 코칭 프로그램을 챙겨보며 반추한다. 어른의 전형성이 희미해지고 있다보니, 모두가 배우기를 멈출 수 없다. ‘늙지 않으려는 시대’, 지속가능한 네버랜드는 어디일까? 긍정적인 점은, 이전 세대가 모든 것을 물려주고 어른으로 대우받는 것을 원했다면, 지금의 시니어세대는 자신에게 몰두한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인생을 찾고 있고, 스스로를 가꾸고 살아가면서 젊은 동력을 유지하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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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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