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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칼럼]절실함이 만들어 낸 기적같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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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칼럼]절실함이 만들어 낸 기적같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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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량이 비슷한 선수끼리 겨루면 승부는 대개 절실함에서 갈린다. 반도체 전쟁도 다를 리 없다. 지난 15일 삼성은 용인에 300조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겠다고 했다. 얼핏 보면 여느 투자 발표와 뭐 다르겠나 하겠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인력(引力)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요, 대내적으론 국가 미래를 위해 수도권 규제, 국토 균형 발전의 금기를 깬 용기였다. 삼성과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절실함이 3축으로 똘똘 뭉치지 않았다면 불가능할 일이었다.


첫 번째 절실함은 대통령이었다. 반도체는 21세기 패권국 싸움의 승부처다. 동맹과 안보, 경제와 먹거리가 여기 달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은 핵심 성장 엔진이자 안보 전략 자산"이라며 "민간 투자를 정부가 확실히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은 국가의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반도체특별법이 정부 원안보다 크게 후퇴했을 때 대통령이 "전문가가 필요한 게 아니다. 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화를 낸 것도 그래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일반 산업단지가 아닌 국가 산업단지로 추진되는 것도 대통령의 절실함 때문이다. 일반 산업단지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인허가를 좌지우지한다. 지자체 간의 갈등이나 부처 협의 지연으로 공사가 부지하세월 늘어지기 일쑤다. 오죽하면 반도체 공장 하나 짓는데 ‘한국은 8년, 미국은 3년’ 소리가 나오겠나. 과장이 아니다. 일반 산업단지로 조성 중인 SK하이닉스가 좋은 예다. SK는 2019년 2월 투자 발표 후 3년 10개월간 첫 삽도 뜨지 못했다. 반면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공장은 발표 4개월 만에 착공했다. 대통령이 "속도가 중요하다"며 국가 산단을 밀어붙인 이유다. 국가 산단은 국토교통부 장관이 부처 협의를 주도한다. 어지간한 갈등과 민원은 범정부 차원에서 빠른 해결이 가능하다.


절실함의 두 번째 주인공은 백만기 국가지식재산위원장이다. 그는 산업부 OB다. 1980년대 한국 반도체 산업을 함께 일군 민·관 중 관 쪽의 주역이란 자부심이 있다. 지난해 6월 그는 대통령과 독대 만찬을 했다. 2시간 30여분 동안 그가 말한 건 ‘절실함’이었다고 한다.

‘…초창기 한국 반도체 공장 건설은 민간 기업과 정부가 일심동체가 돼서 9개월 만에 이뤄냈다. 당시 IBM 중역이 한국에 와서 깜짝 놀라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TSMC의 모리스 창은 반쯤 은퇴했다. 그런데 2015년 다시 돌아와 야전침대를 놓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삼성이 애플, 퀄컴의 주문을 일부 따내자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인텔 최고경영자(CEO)였던 앤디 그로브는 "반도체 경쟁에선 오로지 편집증 환자만이 살아남는다"고 했다….’


그날 오간 이런 얘기들을 통해 대통령의 머릿속엔 절실함의 씨앗이 심어졌을 것이다. 백만기 위원장은 "속도를 강조하는 국가 산업단지, 삼성의 투자를 끌어낸 데는 그런 절실함이 있지 않았겠나"라고 했다.

세 번째 절실함은 이상일 용인시장이다. 그는 지난해 시장 선거전략을 고심했다. 선택은 반도체였다. 용인은 수도권 최남단, 고급 인력이 오는 마지노선이다. 용인이 안 되면 대한민국 어디에도 안 된다. 반도체에 올인했다. 반도체 고속도로와 반도체 마이스터고등학교 신설도 약속했다. 시장에 당선되자마자 인수위원회에 반도체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었다. 지난해 말엔 반도체 산업육성조례를 제정했다. 지자체 최초다.


삼성의 입지 선정에도 적극 거들었다. 삼성이 애초 생각한 땅보다 더 북쪽, 수도권에 가까운 곳을 권했다.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가 완공되면 인재들을 다 뺏길 것"이라고 협박(?)도 했다고 한다. 이상일 시장은 "삼성의 이번 투자로 160만개의 일자리, 최대 2조원의 세수 증가가 예상된다"며 "절대 다른 지자체에 뺏길 수 없었다"고 했다.


삼성이 용인 투자를 발표한 다음 날 용인시 노조는 "시장님 큰일 하셨습니다"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공무원 노조가 이런 보도자료를 낸 것은 드문 일이다. "시장님께 성과급을 드려야겠다"는 댓글도 달렸다. 모두 절실함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일이다.





이정재 경제미디어스쿨원장 겸 논설고문 yijungj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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