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달간 서울시청 앞에는 변하지 않는 풍경이 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설치한 분향소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경찰들의 모습이다. 참사가 일어난지 반년이 가까워 지고 있지만, 남은 이들의 슬픔과 분노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날씨처럼 아직 냉랭하기만 해 보인다.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분향소 주변에 경찰병력이 배치돼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분향소 주변에 경찰병력이 배치돼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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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이런 분위기에 작은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의 시작은 서울시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서울시는 지난 7일 이태원 참사 유족 측에 희생자 159명 전원의 위패와 영정을 보신 ‘진정한 분향소’를 다음달 1일부터 5일까지 5일 간 함께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공동 추모기간 이후에는 서울시청 주변에 유가족들이 정부·서울시와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임시 추모공간 및 소통공간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항구적인 추모공간 설치 논의 역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서울시가 제안했던 ‘녹사평역 지하 4층’ 추모공간 보다는 한층 진전된 안이다.

물론 유가족은 서울시의 이같은 제안을 당일 거절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제안은 분명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전된 안이다. 유가족들도 서울시의 제안을 거절하기는 했지만 이같은 부분은 인정했다. 유가족들은 입장문을 통해 "진전된 안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유가족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이 만들어진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임시 추모공간 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며 "정부·서울시와 대화를 이어갈 창구는 이미 열려있고 앞으로도 계속 열려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그간 분향소 철거 및 이전을 전제로 한 서울시와의 대화에는 나서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서울시가 유가족이 요구했던 위패와 영정이 있는 분향소 설치를 제안함에 따라 대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열어둔 것이다.


일각에서는 서울시의 이번 제안을 비판하고 있다. 서울시가 그간 강조해왔던 ‘광장 사용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가족들에게 진전된 안을 제안하며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행동임을 감안하면 마냥 비판만을 할 수는 없다. 지금 유가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관심과 공감이다. 참사 당일 희생자의 시신을 임시안치한 용산구 원효로다목적체육관 체육관에 모였던 유가족들은 새벽의 추운 냉기보다 아무도 그들을 챙겨주지 않는 냉대에 더욱 낙담했었다.

서울시의 행동이 긍정적인 것은 첨예한 문제에 그들이 ‘총대’를 멨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참사는 많은 경우 정쟁의 도구로 쓰여왔다. 사회적 참사의 고통과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민들은 각자가 지지하는 입장에 따라 서로 나뉘어 갈등을 더욱 키우기만 했다. 그 와중에 유가족들은 마음껏 추모를 하기도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의 대치가 장기화 된다면, 사회적인 상처의 치유는 고사하고 갈등만 더욱 심해질 것이다. 누군가는 비판을 받더라도 양보를 해야만 한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가진 유가족들보다는 서울시가 먼저 나서는 것이 훨씬 긍정적인 방안이다. 서울시의 행보를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더욱 힘을 실어줘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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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서울시가 제안한 모두가 추모할 수 있는 ‘진정한 분향소’에 대해 유가족도 좀 더 심사숙고 해주시길 바란다. 사회적 참사가 벌어졌지만, 진영으로 나뉘어 진정한 추모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든 유가족들이 더 이상 길에서 슬퍼하지 않기를 바란다.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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