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표준영정'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화폐나 교과서 등에 실리는 역대 위인들의 용모를 표준으로 지정한 인물화를 말한다. 문체부는 1973년 5000원 구권 지폐 속 율곡 이이의 모습이 서구적인 이목구비를 가졌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표준영정제도'를 도입, 역사적 인물 초상화의 표준을 지정했다.


당시 국내 제조 기술로는 은행권 원판을 제작할 수 없어 영국의 제조회사 토마스 데라루 사에 제작을 의뢰했다. 공식적인 초상화가 없어 영국의 제조사가 그들의 기준과 정서에 따라 이이의 초상을 재현하다 보니 서구적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표준영정(가운데). [사진=연합뉴스 제공]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표준영정(가운데). [사진=연합뉴스 제공]

AD
원본보기 아이콘

2009년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면서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역사적 인물의 초상화 작가의 친일 활동이 지적돼 논란이 일었고, 2020년에는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제기돼 표준영정과 화폐의 인물화인 화폐 영정까지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당시 100원권 이순신 장군을 그린 장우성 작가, 현재 5000원권과 5만원권의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김은호 작가, 1만원 세종대왕의 김기창 작가 등이 대상이다. 김기창, 김은호 작가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도 이름이 올랐다.

표준영정제도 도입 당시 박정희 정부는 충무공 이순신 표준영정을 지정하면서 화가의 친일 전력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기록원 문서에 따르면 당시 심사에서 장우성과 김은호 두 화백의 이순신 초상화를 놓고 고심하다 장 화백의 작품을 선정했다. 두 화가는 일제강점기 때 친일 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친일 화가로 등재돼 있다.


화폐 속 표준영정. 위에서부터 5만원권 신사임당, 1만원권 세종대왕, 5000원권 율곡 이이, 1000원권 퇴계 이황. [사진=아시아경제DB]

화폐 속 표준영정. 위에서부터 5만원권 신사임당, 1만원권 세종대왕, 5000원권 율곡 이이, 1000원권 퇴계 이황. [사진=아시아경제DB]

원본보기 아이콘

23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강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장 화백의 상속인 장모씨는 2021년 10월 서울중앙지법에 한국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장씨는 1973∼1993년 사용된 500원권과 1983년부터 현재까지 사용되는 100원 동전에 장 화백의 충무공 영정이 사용돼 저작권이 침해됐다며 이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한국은행은 이에 대해 1975년 화폐 영정을 제작하면서 대가로 적정한 금액(150만원)을 지급함으로써 양도 혹은 이용 허락을 받았으며,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공정 이용'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AD

김 의원은 이번 소송 결과에 따라 향후 교과서 집필과 방송·전시 등에 다방면으로 사용되는 이순신 표준영정의 저작권 문제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작가의 친일 논란과 복식 고증 오류에 이어 저작권 문제까지 현실화한 시점에서 이순신 표준영정의 재제작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