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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점유권원 적극 증명 못 해도 '자주점유' 추정 번복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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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취득시효 주장 배척한 원심 파기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자주점유 추정을 받는 부동산 점유자가 시효취득을 주장하면서 점유권원을 적극적으로 증명하지 못했다고 해도 그 같은 사정만으로 자주점유 추정이 번복되는 것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자주점유(自主占有)는 '소유의 의사'를 갖고 하는 점유로 임차인처럼 소유의 의사 없이 점유하는 타주점유(他主占有)와 구별되는 개념이다. 민법상 자주점유인지 타주점유인지 여부는 취득시효 등에서 큰 차이를 갖게 되는데 민법 제197조(점유의 태양) 1항은 '점유자는 소유의 의사로 선의, 평온 및 공연하게 점유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 점유자의 점유는 일단 자주점유로 추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자주점유와 타주점유를 구별하는 기준인 '소유의 의사'는 점유를 시작한 때를 기준으로 점유자의 내심의 의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점유취득의 원인이 된 권원의 성질이나 점유와 관계있는 모든 사정에 의해 외형적·객관적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사진출처=아시아경제DB

서울 서초동 대법원./사진출처=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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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민유숙)는 최근 서울시가 모 공립 초등학교 부지 일부에 대해 취득시효 완성을 원인으로 사망한 토지소유자 A씨의 상속인들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피고인들의 반소 청구를 인용, 서울시가 각 상속인들에게 상속비율에 따른 지분 이전 등기를 하도록 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고의 자주점유 추정이 깨어졌다는 원심판단에는 자주점유의 추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문제가 된 경기도 광주군 A씨 소유 토지(2823평)는 1942년 11월부터 초등학교 부지 중 일부로 사용됐고, 1950년부터 진행된 농지분배절차 과정에서 해당 초등학교에 분배됐다.

1997년 폐지된 교육법과 지방교육자치법에 따라 해당 토지를 교육재산으로 귀속받은 서울시는 1964년 A씨를 비롯한 초등학교 부지의 등기부상 소유자들을 상대로 1942년 부지를 증여받았다고 주장하며 증여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정등기 청구 소송을 냈다.


A씨는 1심 소송이 진행되던 중 1965년 사망했다. 자녀들과 함께 토지를 상속한 A씨의 아내 역시 2019년 2월 사망,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는 나머지 상속인들만 피고로 남게 됐다.


한편 서울시는 1982년 토지구획정리사업법에 따라 서울 송파구 일대 가락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시행, 환지처분을 했는데 환지 전 '경기 광주군 중대면 가락리'에 속해 있던 이 사건 토지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울 성동구, 서울 강남구, 서울 강동구를 거쳐 서울 송파구로 순차 변경됐다.


애초 증여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한 1심에서는 A씨에 대한 공시송달의 방법으로 절차가 진행됐고, 증인신문을 거쳐 서울시가 승소했다. 이후 서울시는 1심 승소 판결에 의해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했다.


하지만 상속인들의 추완항소에 따라 2심이 진행됐다. 2심 재판부는 A씨의 상속인들이 항소기간이 훨씬 지난 뒤에 항소를 했지만 ▲피고 A씨가 1심 판결 선고 전에 사망했고 ▲상속인들이 2020년 3월에야 1심 판결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주장하며 추완항소장을 제출했고 ▲1심 판결 선고는 적법하지만 A씨의 사망으로 그 소송절차는 1심 판결 선고와 동시에 중단됐기 때문에 사망한 A씨에 대한 판결 정본 송달은 효력이 없고 ▲상속인들이 소송절차를 이어받아 1심 판결 정본을 송달받기 전까지는 항소제기기간이 진행될 수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항소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1심 원고 승소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먼저 서울시가 주위적으로 주장한 증여 사실과 관련, 증인 B씨의 증언만으로 서울시가 토지를 무상 기부받은 사실을 인정한 1심과 달리 B씨의 인적 사항이나 구체적인 증언 내용 등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다른 학교 부지 소유자들을 상대로 한 이전등기 청구가 일부 받아들여졌다는 사실만으로 증여 사실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울시는 2심에서 증여를 원인으로 한 주위적 청구 외에 예비적으로 취득시효 완성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를 추가했다. 초등학교 부지로 사용되기 시작한 1942년 11월 22일부터 , 혹은 토지구획정리사업법에 따른 환지처분 공고가 난 다음날인 1988년 12월 23일부터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20년간 점유했기 때문에 1962년 11월 22일 내지 2008년 12월 23일 취득시효가 완성돼 부동산 소유권을 취득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서울시가 점유취득시효를 위해 필요한 자주점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등 이유로 서울시의 주장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서울시 산하의 초등학교가 진정한 소유자였다면 농지개혁법에 따른 분배를 받을 것이 아니라 곧바로 취득원인을 증명해 소유권이전등기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봤다. 소유자라면 통상 취하지 않을 태도를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소유자로서의 의사로 자주점유를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또 재판부는 농지개혁법에 의한 농지분배 당시 분배농가란에는 학교가 기재돼 있었지만, 피보상자란에 A씨가 기재돼 있었던 점 ▲1950년경 작성된 토지대장 및 등기부대조원표에 A씨가 토지의 소유자로 기재돼 있는 사실 ▲같은 시기 작성된 상환대장, 농지소표, 지가사정조서, 지주신고서, 지주확인일람표 등에도 전 소유자란에 A씨가 기재돼 있는 사실 등을 볼 때 당시 해당 토지가 A씨의 소유로서 농지분배절차가 진행됐고, 수분배자인 원고 또한 이 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밖에도 재판부는 아동교육을 위한 시설 내지 영조물로 권리능력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초등학교는 농지분배를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초등학교에 대한 농지분배는 당연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을 원용하며 서울시 역시 자경 농가가 아닌 초등학교를 수분배자로 한 농지분배처분이 무효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토지를 자주점유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또 재판부는 서울시의 환지처분 공고일 이후 점유취득시효 주장도 환지예정지에 대한 점유는 종전 토지에 대한 점유와 마찬가지로 보는 것이고, 환지 후 토지에 대한 점유의 태양 역시 종전 토지에 대한 점유의 태양과 달리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재판부는 피고들의 반소를 받아들여 서울시가 각 상속비율에 따라 지분이전 등기를 이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취득시효의 요건인 자주점유 관련된 2심의 판단이 틀렸다고 봤다.


재판부는 먼저 자주점유 추정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제시했다.


앞서 대법원은 "부동산 점유권원의 성질이 분명하지 않을 때에는 민법 제197조 1항에 의해 점유자는 소유의 의사로 선의, 평온 및 공연하게 점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며, 이러한 추정은 지적공부 등의 관리주체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점유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라며 "따라서 국가 등이 점유취득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토지의 취득절차에 관한 서류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점유의 경위와 용도, 국가 등이 점유를 개시한 후에 지적공부에 그 토지의 소유자로 등재된 자가 소유권을 행사하려고 노력하였는지 여부, 함께 분할된 다른 토지의 이용 또는 처분관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할 때 국가 등이 점유 개시 당시 공공용 재산의 취득절차를 거쳐서 소유권을 적법하게 취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경우에는, 국가 등의 자주점유의 추정을 부정해 무단점유로 인정할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이 같은 과거 선례를 토대로 재판부는 "원심 판결의 이유와 기록에 의해 알 수 있는 사정을 위 법리에 비춰 보면, 비록 원고가 이 사건 구 토지(환지되기 전 토지)의 소유권 취득절차에 관한 서류를 충분히 제출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원고가 이 사건 구 토지를 점유하게 된 경위나 점유의 용도, 이 사건 구 토지와 함께 학교 부지로 사용되고 있는 다른 토지의 처분관계 등을 감안할 때 이 사건 구 토지에 대한 원고의 점유가 무단점유라거나, 자주점유의 추정이 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는 위 초등학교 부지를 증여받아 점유하고 있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이는 점 ▲초등학교 교장이 1963년 '초등학교 이전 당시 A씨로부터 이 사건 구 토지를 기부 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된 재산조사서를 작성했고, 원고가 1964년 A씨를 포함한 위 초등학교 부지 원소유자들을 상대로 증여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는 등 소유자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이는 점 ▲학교 부지를 이전할 무렵인 1942년 당시 시행되고 있던 의용민법은 부동산 물권변동에 관해 의사주의를 따르고 있어 소유권 취득을 위해 반드시 이전등기를 할 필요가 없었던 점(1960년 제정된 민법은 의사주의 대신 등기 등 공시방법을 물권변동의 필수적 요건으로 보는 형식주의를 채택했다) ▲농지분배절차는 국가가 시행한 반면, 초등학교 사무는 국가와 별개의 법인격을 가지는 경기 광주군 교육구가 담당했기 때문에 A씨 소유임을 전제로 농지분배절차가 진행됐다는 사정만으로 당시 초등학교 사무를 담당한 기존 공공단체가 A씨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같은 취지에서 초등학교에 대한 농지분배가 무효라는 점 역시 자주점유 추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정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 ▲이 사건 구 토지가 초등학교 부지로 사용된 이후 A씨나 그 상속인들인 피고들이 초등학교 사무를 담당하는 기존의 공공단체 또는 원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지료(토지 사용에 대한 비용)를 청구하는 등 소유권을 주장한 사정은 드러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이 같은 이유로 원심 판결 중 서울시가 청구한 본소의 예비적 청구(취득시효 완성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에 관한 부분과 피고들의 반소 부분(상속비율에 따른 지분이전 등기 청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다만 서울시의 주위적 청구, 즉 증여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부분에 대해서는 이를 기각한 원심의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서울시의 상고를 기각,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점유취득시효에 있어 국가 등의 자주점유 추정 여부 판단 기준에 관한 기존 판례 법리를 구체적인 사안에 적용해 취득시효 주장자가 적극적으로 점유권원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 원고의 자주점유 추정이 번복된다고 볼 수 없음을 강조하고, 그 외 이 사건에서 나타난 정황에 의하더라도 원고의 자주점유 추정이 번복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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