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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한국 IT 발전의 원동력, 빠른 보급과 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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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한국 IT 발전의 원동력, 빠른 보급과 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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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 2022년 봄과 가을, 오랜만에 한국에 머물며 가고 싶었던 곳에 실컷 다녀왔다. 그중 하나가 세운상가다. 종묘 옆 서순라길을 즐겁게 걷다가 세운상가와 마주하니 옛 생각이 났다. 1987년 용산전자상가 개장으로 그 위상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이곳이 한국 IT의 보급 기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득 빠른 도입과 보급이야말로 한국 IT 역사를 가리키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수요가 있을 때 보급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보급 가능성이 있어야만 도입도 가능하다. 한국 IT시장은 이 두 가지 호흡이 잘 맞아떨어졌고, 그것이 초기에 한국을 IT 강국으로 만든 기반이 됐다. 그런데 이는 결과론적인 이야기고, 그것을 가능케 한 이유를 먼저 찾아야 한국 IT 경쟁력의 진짜 저력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우선 시기적 혜택이라는 가설을 내세워볼 수 있다.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산업사에서 시기가 결과를 좌우하는 예는 많다. 20세기 초 미국이 디트로이트에 집중시킨 자동차산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폭발하는 수요로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일본 자동차를 비롯한 여러 수입차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자 빠른 속도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세기 말 한국은 높은 경제성장률로 IT 관련 수요가 이제 막 늘어나고 있었다. 이미 중진국으로 도약한 한국은 관련 물품의 생산력도 갖추고 있었다. 수요와 공급 능력이 시기적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새로운 산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투자 전례도 있었으니, 호의적인 정부정책과 지원도 기대해볼 만했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한국 정부는 새로운 산업 육성 차원에서 TV 선으로 연결 가능한 케이블 모뎀 개발과 보급을 지원했다. 그 결과 전국아파트 단지의 기존 케이블 TV 선을 이용,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초고속인터넷 접속의 보급을 빠른 속도로 촉진시켰다.


가설은 또 있다. 바로 문화적 조건이다. 20세기 말 한국인들은 1960년대부터 급속도로 진행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며 일상의 빠른 변화 속도를 경험했기 때문에 빠르고 새로운 변화에 재빨리 적응할 수 있는 태도와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지난 가을 부산에서 우연히 전기차 택시를 처음 타게 됐다. 신기한 마음에 기사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이미 전기차에 적응을 끝낸 기사는 나의 질문에 자세하게 답해주었다. 그의 답변을 들으며 나는 1998년 케이블 모뎀을 처음으로 설치한 친구 집에 갔을 때를 떠올렸다. 그 친구는 이것저것 보여주면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이미 이해가 끝났고, 일상 속에서 완전히 익숙해져 있었다. 그 친구는 호기심이 있던 차에 마침 무리하지 않은 가격으로 접근이 가능했다고 했다. IMF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인터넷 속도와 보급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새 기술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순순히 일상으로 받아들인 사용자들의 증가로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 됐다. 시기적 가설과 문화적 가설이 상호 작용해 만들어낸 결과다. 전기차 보급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IT를 더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IT, 나아가 세계 IT 역사에 새로운 창을 열 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관련 종사자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불확실한 시장에서 새로운 개발은 늘 위험이 따른다. 그러나 한국의 전례로 볼 때 새로운 것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믿어도 되지 않을까. 호기심 충만한 나 같은 사용자는 한국이 만들어낼 새로운 창, 그것을 통해 만날 새로운 세계가 궁금하다.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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