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의 장기소멸시효 배제… 단기소멸시효만 적용 가능
민법 제766조 2항에 대한 헌재 위헌 결정 고려

대법 "'거창 사건' 국가배상청구권 장기소멸시효 적용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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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1951년 발생한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 희생자의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에는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5년'의 장기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관련 특별법을 통해 이미 희생자와 유족이 결정됐다는 이유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상규명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손해배상 청구의 길이 막혔던 유족들이 구제받을 수 있게 됐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거창 사건 희생자의 유족 A씨와 B씨가 국가를 상대로 각각 4000만원과 20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한 손해배상청구 사건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거창 사건은 시기와 내용 및 성격상 과거사정리법 제2조 1항 3호의 '1945년 8월 15일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뤄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에 해당한다"며 "따라서 원고들의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는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의 효력에 의해 민법 제766조 2항, 구 회계법 제32조에 따른 장기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으며, 민법 제766조 1항이 정한 주관적 기산점과 이를 기초로 한 단기소멸시효만이 적용될 수 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도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해 이 사건 위헌 결정에 따라 효력이 없어진 규정을 적용했다"며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소멸시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배상법은 민법의 소멸시효에 관한 제166조와 제766조 등을 준용하고 있다.


민법 제166조 1항은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고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정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법 제766조 1항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며 단기소멸시효를, 2항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을 경과한 때에도 전항과 같다'며 장기소멸시효를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배상청구권의 경우 '안 날로부터 3년'의 단기소멸시효는 그대로 적용되지만, 국가재정법(구 회계법) 등에 따라 장기소멸시효는 민법상 10년이 아니라 5년이 적용된다.


국가재정법 제96조 1항은 국가의 금전채권의 소멸시효를 5년으로, 같은 조 2항은 국가의 금전 채무의 소멸시효를 5년으로 각각 정하고 있다.


거창 사건은 한국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1년 경남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지리산 공비들이 경찰 등을 습격해 막대한 피해를 입힌 직후 육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 군인들이 같은 해 2월9일부터 11일까지 지역 주민 수백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국회는 1996년 1월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희생자와 유족을 결정했다. 하지만 당시 희생자에 대한 보상 규정이 마련되지 못했고, 2004년 보상금 지급 관련 조항이 포함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고건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시행되지 못했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제정돼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활동했지만, 거창특별법에 의해 이미 사망자 및 유족 결정이 이뤄진 피해자들은 진상규명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소송의 원고들은 1998년 거창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심의위원회가 거창 사건의 유족으로 결정한 사람(한명은 소송 계속 중 사망해 손해배상청구권을 상속받은 자녀가 소송을 수계)들로, 2017년 국가 예하의 국군에 의해 자행된 거창 사건으로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1심과 2심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국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2014년 대법원은 거창 사건 희생자 유족이 낸 국가배상청구 사안에서 국가의 장기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권리남용이라는 이유로 저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활동종료일인 2010년 6월 30일부터 3년 안에 권리를 행사했어야 한다고 판시했는데, 이에 따르면 이미 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거창 사건에서 사망자 및 유족 결정을 받은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해야 할 상당한 기간은 진실규명 결정이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의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해 단기간으로 제한돼야 하고, 특수한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해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봐야 한다"며 "원고들의 거창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2010년 6월 30일로부터 3년이 경과한 2013년 6월 30일경 시효로 소멸했다고 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1심과 2심 판단을 뒤집었다.


해당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인 2018년 8월 과거사정리법 제2조 1항 3호의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에 관한 국가배상 청구에 민법 제766조 2항의 장기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이 있었는데, 이를 간과했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헌재 위헌 결정의 효력은 과거사정리법 제2조 1항 3호의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에서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이 위헌 결정 당시까지 법원에 계속돼 있는 경우에도 미친다"며 "따라서 그러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서는 민법 제766조 2항에 따른 10년의 소멸시효 또는 국가재정법 제96조 2항(구 회계법 제32조]에 따른 5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달 '유서 대필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기훈씨와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도 같은 법리를 적용해 파기환송 판결을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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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거창특별법에 의해 사망자 및 유족 결정이 이뤄지고 과거사정리법에 따른 진실규명 결정이 이뤄지지 않은 거창 사건도 과거사정리법 제2조 1항 3호에 규정된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선언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며 "파기환송 후 거창 사건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유무가 다시 심리·판단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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