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요청에 공모채 발행 어려워진 은행들
한은에 '적격담보증권' 종류 늘려달라 요구
공모 대신 사모로 하면 자금 쏠림 우려도 ↓
담합·회계처리·한은법 등 쟁점도 남아있어

편집자주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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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이 사모 방식으로 발행된 은행채를 적격담보증권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해당 조치가 나오면 은행들의 자금 사정에 숨통이 트인다고 하는데요. 정부와 한은은 구상하는 정책은 뭘까요?


은행이 공모채권 발행 못하게 된 사정

은행업은 다른 경제주체에 돈(신용)을 빌려주는 일입니다. 그런데 빌려줄 곳이 워낙 많다 보니 여러분들의 예·적금만으로 충당하기 어렵죠. 그래서 은행도 여러 방법으로 자금을 충당합니다. 투자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돈을 빌려오기도 하죠. 대표적인 방법이 채권발행입니다. 채권을 찍어 여러 사람으로부터 돈을 확보하고, 이 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수익을 내 갚는 거죠.

그런데 지금 채권발행이 여의치 않습니다. 정부에서 금융지주와 은행들에게 채권 발행을 자제하라고 했거든요. 레고랜드 사태 이후로 영세한 기업들은 채권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참고 기사: 김진태와 레고랜드는 어떻게 금융시장을 흔들었나] 금융시장이 불안하니 투자자들은 너도나도 우량한 은행 채권만 사기 시작했고요. 자금 쏠림이 심해질 기미가 보이니 은행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준 거죠.


문제는 은행이 자금을 조달할 창구가 사라졌다는 겁니다. 은행들도 투자를 하고 대출영업을 해야 하는데 말이죠. 게다가 여태껏 은행들이 찍어놓은 채권도 문제입니다. 채권의 만기가 돌아오면 은행들은 새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모으고 이를 상환하는 데 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채권발행을 사실상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 만기가 돌아온 채권을 상환하는 일만 하고 있죠.

은행끼리 사고판 채권…한은에 맡기고 돈 가져오자
[송승섭의 금융라이트]돈 필요한 은행들…한은, 사모채 받아줄까 원본보기 아이콘

은행들이 언제나 채권발행을 못 한 채 가만히 있을 순 없습니다. 그래서 금융당국과 한은에 새로운 길을 요구했죠. 은행들은 한은에서 돈을 받아올 수도 있는데, 이걸 좀 쉽게 해달라는 겁니다. 은행은 한은에서 돈을 가져올 때 담보를 맡깁니다. 이 담보를 ‘적격담보증권’이라고 부릅니다. 한은은 적격담보증권으로 인정하는 금융상품을 미리 정해뒀습니다. 국채, 통화안정증권, 정부보증채, 신용증권 등입니다. 이 담보 종류를 늘려달라는 게 은행권의 요구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은행이 발행한 사모채권’을 적격담보증권에 포함시켜달라는 겁니다. 앞서 말했듯 은행은 시장에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돈을 모읍니다. 이걸 ‘공모채권’이라고 합니다. 반면 사모채권은 특정한 주체로부터 돈을 받습니다. 시장에 풀리는 채권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 사모채권을 발행했다고 해서 시장의 유동성이 확 줄어들거나 자금 쏠림 문제가 나타날 일이 거의 없습니다.


방식은 은행이 발행한 사모채권을 다른 은행이 사는 식입니다. A은행이 사모채권을 발행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걸 B은행이 사주는 겁니다. 만약 사모채권을 ‘적격담보증권’으로 인정해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B은행은 A은행이 발행한 사모채권을 한은에 적격담보증권으로 맡기고 자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한은의 자금은 유동성이 훨씬 높기 때문에 은행들이 규제 비율을 지키는 데 활용할 수 있죠. A은행은 채권발행으로 자금조달에 성공했으니 윈-원(win-win)이고요.


담합우려·회계처리 등 쟁점사안 정리해야

다만 몇 가지 쟁점이 남아있습니다. 우선 ‘담합’ 논란입니다. 현행법상 은행이 은행의 사모채권을 사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담합처럼 보일 여지가 있습니다. 은행끼리 서로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채권을 발행하고 사주는 거 아니냐는 시선이죠. 일종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요. 이건 공정거래위원회가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경쟁제한행위’에 해당합니다. 이 같은 우려에 금융당국은 “은행들끼리 미리 만나서 조건을 조율하는 식의 행동만 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회계처리 문제입니다. 공모채권이나 사모채권이나 방식이 살짝 다를 뿐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회계장부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은행이 발행한 공모채권은 공개적인 방식으로 수요자를 모집합니다. 또 공모채권은 비교적 자유롭게 여러 주체가 사고팔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은행감독규정상 공모채권은 ‘유가증권’으로 분류하죠. 그러나 사모채권의 경우 특정한 사람들에게 돈을 받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돈을 빌린 것’으로 해석합니다. 사모채권이 ‘대출채권’으로 분류되는 이유죠. 만약 대출로 분류되면 규제를 지켜야 하는 은행들로서는 사모채 발행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상형 한국은행 부총재보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상형 한국은행 부총재보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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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법도 걸림돌 중 하나입니다. 한국은행법에 따르면 현재 인정받고 있는 담보자산은 ‘유가증권’입니다. 한은이 아직 사모채를 담보로 받아준 적이 없는 것도 법률 때문입니다. 예외 조항이 있긴 하지만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상형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지난 8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 설명회에서 “사모 방식의 은행채가 한은법상 대출과 담보 운영 규정 등에 부합하는지 살펴보고 있다”면서 “가급적이면 올해 내로 판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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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7일 연구기관장 간담회 이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모채 발행은) 은행채 발행을 어느 정도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 하에 만기가 돌아오는 롤오버에 대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그런 문제에서 (검토를) 한 것”이라면서 “우량채와 관련된 시장 상황이 며칠 사이로 바뀌고 있고 긴급성이라든가 예외성 판단을 시점별로 달리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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