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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새로운 세대를 위한 시간이 왔다." 미국 의회 하원에서 20년간 민주당을 이끌어온 '철의 여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지도부에서 물러난다.


펠로시 의장은 17일(현지시간) 하원 연설에서 "이제 우리는 대담하게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며 내년 1월 개원하는 다음 의회에서 당 지도부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지도부의 세대교체를 예고한 것이다.

◆흰 재킷 입고 지도부 퇴진 연설, "민주주의 수호" 강조

펠로시 의장은 이날 여성 참정권을 상징하는 흰 재킷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안 처리 당시 착용했던 브로치를 단 채 발언대에 올라섰다.


과거 하원의원이자 시장인 아버지와 함께 처음 국회의사당을 방문했던 6살 소녀의 기억을 돌이키며 그는 "가장 소중한 민주적 이상을 굳건히 지키는 근본적 사명"을 강조했다. 또한 20년간 하원 민주당을 이끌며 전·현직 대통령과 함께해온 정책 성과도 일일이 언급했다. 다만 4명의 대통령 중 트럼프 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무시됐다.

펠로시 의장은 "매일 나는 미국 민주주의라는 기적에 경외심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린 비극적이게도 이 회의장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지켜봤다"면서 2021년 1월6일 의사당 폭동 사건도 언급했다. 그가 "민주주의에 해를 끼치려는 세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영원히 수호해야 한다"고 덧붙이자 회의장에는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펠로시 의장의 지도부 퇴진 결정은 11·8 중간선거 패배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선거를 전후로 미 정계에서는 펠로시 의장의 거취에 눈이 쏠렸었다. 그는 중간선거 개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취에 함구해왔으나, 전날 공화당의 하원 다수당 지위가 확정됨에 따라 이날 공식적으로 퇴진 의사를 밝혔다. 고령에 따른 당내 세대교체 필요성, 중간선거 직전 남편 폴 펠로시 피습 사건 등도 이번 퇴진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본회의장은 펠로시 의장의 마지막 연설을 듣기 위한 인파로 가득 찼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출석했다. 스티브 스칼리스 하원 원내총무를 비롯한 공화당 소속 의원들도 일부 확인됐다. 내년 출범하는 새 의회에서 하원의장이 유력한 케빈 매카시 공화당 원내대표는 "안타깝지만 바쁘다"며 불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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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女하원의장' 펠로시는 누구…강한 카리스마로 '유리천장' 깨뜨려

이번 중간선거에서 19선에 성공한 펠로시 의장은 1987년 47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의회에서 민주당 여성 정치인은 12명에 불과했다. 이날 퇴진 연설에서도 그는 "가정주부에서 하원의장이 될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펠로시 의장은 2003년1월부터 '민주당 간판'으로 하원을 이끌어왔다. 여성 최초로 당 원내대표(2003년1월~2007년1월)를 역임하고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 2007년1월에는 미 권력서열 3위 자리인 하원의장직에 역사상 최초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더했다. 그 자리에서 펠로시 의장은 "200년 넘게 기다려온 순간"이라며 "우리는 대리석 천장을 깨뜨렸다"고 선언해 눈길을 모았다.


이후 펠로시 의장은 민주당이 하원에서 다수당 자리를 뺏긴 뒤인 2011년 1월~2019년 1월 하원 원내대표로, 민주당이 다시 다수당이 된 2008년1월부터 지금까지 하원 의장을 맡아왔다.


정치적 성향은 민주당 내에서도 진보적 색채를 띤다. 미국 내에서도 특히 진보적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한 그는 독실한 가톨릭으로 알려졌으나 낙태와 동성결혼에 찬성한다. 또한 민주주의, 여성, 인권 등 세 단어와 뗄 수 없는 행보를 이어왔고, 대외적으로는 특히 중국과 악연이 두드러진다. 정계 입문 4년 뒤엔 1991년, 베이징 천안문 광장을 찾아 1989년 민주화 시위 희생자를 기리는 플래카드를 기습적으로 펼쳤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때부터 중국 정부는 펠로시 의장을 기피인물로 여겨 왔다. 2007년에는 달라이 라마와 회담했고 2008년에는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했다. 최근에는 중국의 거센 반발에도 대만 방문을 강행했었다.


'강한 카리스마'라는 수식어를 얻어온 펠로시 의장은 2004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며 부시 전 대통령을 "무능한 지도자"라고 강하게 질책했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으나, 그 해 하원 민주당은 의석을 대폭 잃었다. 하지만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시 하원 과반수를 얻어냈을 때, 정계에서는 펠로시 의장의 행보를 가장 주목했다. 직후 그는 여성 최초의 하원의장에 올랐다.


2020년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연두교서 자리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2020년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연두교서 자리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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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당내 반발은 물론, 공화당까지 설득하며 '오바마 케어' 통과에 큰 역할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펠로시 의장은 법안 통과를 위해 1년 이상 끈질기게 노력했다"며 "논란이 되는 법안을 지지할 경우 정치경력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큰 도전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현지 언론들은 30년 이상 하원에 몸담은 펠로시 의장에 대해 정당의 최우선 순위에 투표하며 당내 존경을 얻어낸 인물, 민주당 내 이질적인 파벌들과 논쟁을 벌일 수 있는 초당적 인물로 평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있어 펠로시 의장은 '미친 낸시'로 요약된다. 2018년12월 야당인 민주당 원내대표로 백악관을 찾아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과 연방정부 셧다운 이슈를 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 설전을 벌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 '트럼프의 천적'으로 그를 칭하는 배경이 여기 있다. 2020년2월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연두교서가 끝나자마자 바로 뒤에 서서 사본을 찢는 퍼포먼스를 강행했다. 당시에도 그는 흰 재킷을 입고 있었다. 이밖에 하원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내란 선동 등의 혐의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두 번이나 가결하기도 했다.


◆향후 거취는?

펠로시 의장은 지도부 자리에서는 물러나지만 하원의원으로는 계속 활동한다. 지난 8일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그는 19선에 성공했다. 내년 1월 개원하는 차기 의회에서는 평의원으로 활동할 전망이다. 다만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펠로시 의장이 막후 정치 지도자로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펠로시 의장의 퇴진에 따라 오는 30일 지도부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민주당 하원 대표 후보로는 하킴 제프리스 뉴욕주 하원 의원이 유력하게 언급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역사는 그를 우리 역사상 가장 훌륭한 하원의장으로 기록할 것"이라며 "그는 민주주의의 맹렬한 수호자로서, 역사는 치명적인 의사당 폭동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그의) 결의를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펠로시 의장을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칭하며 "우린 그에게 깊은 감사의 빚을 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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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은 펠로시 의장을 “유리 천장을 산산조각 낸 역사적 유산을 가진 정치사의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WP는 "두번이나 여성 하원의장을 거치며 하원의장직을 재정의한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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