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반도체 부활 ‘호들갑 위기감’보다
장기 전략 ‘시사점’ 살피는 게 중요
우리 약점 찾아내 선별적 지원 절실

일본 반도체의 부활. 상대를 과소평가해서 얻을 이익은 별로 없겠지만 일단 의문은 있다. 한국·대만에 10년 뒤처진 일본이 불과 5년 내 그 격차를 없애는 게 가능할까. 도요타·소니 등 일본 8개 기업이 10억엔씩 출자하고 일본 정부가 지원금 700억엔을 보태 만든다는 ‘라피더스’는 2027년까지 2나노미터(㎚, 10억분의 1m) 미만 첨단 반도체를 개발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일본은 삼성전자를 보유한 한국이나 TSMC의 대만과 대등한 경쟁 상대로 떠오른다.


일본 정부의 지원금 700억엔은 우리 돈으로 6640억원 정도다. TSMC가 올해 자본 지출로 쓰는 돈이 47조원이다. 올해 일본 정부 추가경정예산에 책정된 반도체 예산이 12조원인데, 미국이 ‘생산 시설 유치’에 쓰겠다고 최근 발표한 지원금만 74조원이다.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지만 한국 정부는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을 통해 5년간 34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중국 역시 수십억 달러를 반도체 산업에 쏟아붓고 있으나 아직 한국이나 대만 수준에 근접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래서 일본발 뉴스에 "한국은 뭐하고 있나"는 식의 비판을 자동으로 갖다 붙이는 건 다소 기계적이며 패배적 발상이다. 당장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 떠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일본이 어떤 장기적 전략에서 움직이는지 차분히 따져보는 일이다. 일본은 소재·부품·센서 분야 세계 최상위 수준이지만 제조 기술에 약점을 갖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분업화 체계는 일본뿐 아니라 각 반도체 주자들이 자신만의 영역에 집중할 토대를 제공했다. 그러나 미·중 패권 경쟁과 한국·대만 지정학적 위험은 이 틀을 흔들고 있으며, 일본은 TSMC 공장을 유치하거나 ‘빠르다’는 뜻을 사명(社名)에 넣은 회사를 설립해 뒤처진 제조 역량을 단기간 내 확보하려 애쓰는 중이다.


이 시점에서 삼성전자가 라피더스에게 추월당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내라는 주장에 머무는 건 그래서 다소 공허한 조언이다. 일본의 움직임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그보다 매우 구체적인 전략, 즉 우리의 약점인 시스템 반도체와 첨단장비 그리고 인력 양성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여 우리만의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느냐에 쏠려야 한다. 완전하진 않으나 이 모든 과제를 아우르고 있는 K 칩스법(반도체 지원 특별법)의 국회 통과가 시발점이 될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기업 특혜가 야당의 반대 명분이라는데, 안보와 직결된 사안에 대해선 유연한 접근이 요구된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약점을 선별적으로 골라내 지원하는 방식의 보완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다.

AD

일본의 반도체 산업재건 움직임을 접하고 처음 떠오른 단어는 기시감이었다. 한국이나 대만에 비해 "10년 뒤처졌다. (이들을 따라잡을) 마지막 기회"라는 일본 정부의 발표 문구에서 그런 느낌이 더 강해졌다. 수십 년 전 "일본을 따라잡자"며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하던 말이나 정책과 너무 닮지 않았나. 국가안보 자산으로 떠오른 반도체에 일찌감치 투자를 결단한 우리 기업인들의 선견지명을 칭송하든 ‘단지 운이 좋았다’고 치부하든, 우리는 긍정적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K 반도체는 시즌 2 개막을 앞두고 있다. 시즌 1이 그랬던 것처럼 주인공은 기업이다. 국회는 도움은 못 줄지언정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된다.




[시시비비]日반도체 드림팀의 꿈과 K반도체
AD
원본보기 아이콘

신범수 산업 매니징에디터 answ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