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 ‘신용불량자/외국인 환영’. 어느 휴대폰 대리점 앞의 간판 내용이다. 휴대폰 개통이 어려운 고객도 환영한다는 내용이었다. 신용불량자와 나란히 있으니 ‘외국인’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한국에서 ‘외국인’의 의미 변화가 문득 느껴졌다.
1980년대 초반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나 같은 서양인에게 사람들은 주로 ‘미국 사람’ ‘외국 사람’이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외국인이 많지 않았고, 그중 미국인 비율이 높아 그럴 법도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른 뒤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시작되었고, 1990년대 들어서자 그 속도는 매우 빨라졌다. 올림픽 전후 다양한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왔고 1990년대 초 소련, 중국, 베트남 등과 외교관계 수립 후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국적은 더 다양해졌다. 사람들은 이제 서양인을 보면 ‘미국 사람’이 아닌 ‘외국 사람’이라고 불렀다.
이 무렵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노동자’ 앞에는 ‘외국 사람’ 대신 ‘외국인’을 붙여 ‘외국인 노동자’라는 말이 일상화되었다. 출신국 역시 다양해졌고, 한국의 여러 지역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주 고객이 되는 상가도 형성되었다.
또 다른 변화도 이 시기에 일어났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만든 한국계 외국인을 위한 F-4 비자로, 중국 조선족들은 한결 쉽게 한국에 올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조선족 노동자’로 불린다. 여기에 다른 나라의 한국계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그들을 가리켜 ‘순외국인’이라는 이상한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개방한 금융시장에 나타난 외국인 투자자들은 ‘외인’으로부르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그렇게 부르고 있다.
2000년대에도 외국인 인구는 계속 늘었다.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기 위해 온 ‘결혼이민자’라는 새로운 외국인 항목이 생겼다. 숫자가 늘어나면서 2008년 정부가 한국 사회동화지원정책을 마련, ‘다문화가족’이라는 또 다른 외국인 관련 항목이 생겼다.
그 사이 서양인을 보면 무조건 ‘미국 사람’으로 부르던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외국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전하다. ‘외국인’과 ‘외국 사람’은 뜻은 같지만, 표현 대상은 조금 차이가 있다. ‘외국 사람’은 주로 서양 선진국 출신들로 대부분 손님 대우를 받는다. ‘외국인’은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 출신으로 경제적 활동을 위해 온 이들을 향한다. ‘외국인’이라는 단어는 다른 나라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사회에서 사용하는 단어에는 의미 외에 어감과 느낌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내가 본 휴대폰 대리점 간판 속 ‘외국인’에서도 그 묘한 어감을 느꼈다. ‘외국인’은 신용을 증명할 수 없거나 신용이 불량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니 신용불량자와 나란히 써두었을 테고, 이는 또다시 외국인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한다. 휴대폰 대리점 주인이 어떤 악의를 가지고 썼을 리는 없다. 하지만 ‘신용불량자/외국인’이라는 간판에는 편견이 깔려 있다.
이렇듯 악의가 없는 편견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사람을 항목으로 나누는 것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항목을 만들어 나누게 되면 편견이 형성될 가능성이 더 커진다. 때문에 가급적 항목을 줄여나가고 없애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 첫걸음은 외국인을 포함해 사회 속에 만연한 모든 편견과 차별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이다. 이를 위한 언론과 교육 현장의 역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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